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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이 웃어요》
A는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온 친구입니다. 그녀의 둘째 아이와 저의 첫째 아이는 한 달 차이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키우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큰아이를 먼저 키운 경험이 있는 M은 아이 용품 구입부터 감기 치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저의 육아 멘토였습니다.
A는 첫째와 둘째가 15개월 터울이라 연년생처럼 두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었지만, 초보 엄마였던 저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곤 했습니다.
A의 첫째 아이는 예민해서 갓난아기 시절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습니다. 바닥에 내려놓기만 해도 울었고, M은 방광염에 걸릴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민했지만 그녀의 큰 딸은 매우 똘똘했습니다. 8개월 무렵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고, 5세에는 집에 있는 몇 권 안 되는 책을 반복해서 읽더니 스스로 한글을 깨우쳤습니다.
둘째 아이는 큰아이와는 정반대였습니다. 젖을 먹고는 곧잘 잠들고, 순하고 낯가림도 없어 M에게 한결 수월한 아이였습니다. 다만 누나와 달리 말이 조금 느렸는데, 24개월 영유아 검진 때까지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6개월이 넘도록 문장으로 이야기를 하지 않자, A는 복직하기 전에 언어치료센터를 찾았습니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첫째 아이가 있고 둘째가 순한 경우, 엄마의 관심이 덜 가게 되어 언어 발달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치료를 받으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A는 한 달 뒤 복직했습니다.
A의 직장은 경기도에 있었기에 평일에는 시어머님이 아이들을 돌보셨고, 주말에야 A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복직한 지 약 3개월쯤 되었을 무렵, 둘째 아이에게 이상 징후가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바뀌고 엄마와 떨어져 지내 적응이 어려워 생긴 심리적 반응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센터를 방문하고 진단을 받은 결과, 아이는 발달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A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언어치료와 놀이치료 등을 받으러 다녔습니다. 숲이 가까운 경기도 지역으로 이사도 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갈 시기가 되자 A는 발달장애아를 위한 통합교육을 하는 유치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겨우 한 곳을 찾아 등록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다른 엄마들이 유치원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들은 A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를 받아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낯선 공간에 대한 아이의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 무렵, A이 아이들과 함께 저희 집에 놀러왔습니다. A의 둘째 아이는 기차와 자동차를 좋아했습니다. 저희 아들과 함께 기찻길을 만들고 기차를 움직이며, 다투기도 하고 함께 웃기도 하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A가 돌아간 뒤 저는 책장에서 《수잔이 웃어요》를 꺼냈습니다.
《수잔이 웃어요》는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깨 주는 그림책입니다. 책 표지를 양쪽으로 펼치면 앞면과 뒷면이 하나의 그림으로 이어지는데, 시소를 타고 있는 수잔과 수잔의 아버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앞표지 쪽에는 시소 위로 올라가 웃고 있는 수잔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책 제목과 매우 잘 어울리는 그림입니다.
이 책은 수잔의 다양한 표정, 감정, 생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이나 인과관계에 따라 구성된 이야기가 아니라, 단편적인 상황 속에서 수잔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아이가 그린 듯한 자유로운 선과 형태, 그리고 색연필의 부드러운 색감은 보는 이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책장을 넘기면 수잔은 웃고 노래하며, 할머니를 놀라게 하기도 하고 아빠 목마 타는 것을 좋아하는 수잔이 나옵니다. 커튼 뒤에 숨어 수줍어하다가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하는, 장난기 가득한 소녀입니다.
목욕할 때는 물장구를 치며 엄마의 옷에 물을 다 튀기기도 하고, 놀이터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뱅뱅이를 타며 신나게 놉니다. 수학 문제를 틀리고 속상해서 울기도 하지만, 시험지를 접어 종이배를 만드는 유머 있는 소녀이기도 합니다.
혼자 자는 것이 무서워 엄마 품에 안기고, 아빠가 책을 읽어주어야 잠이 드는 천진난만한 수잔의 모습은 우리 아이들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며 아이들은 수잔을 통해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이렇게 수잔과 함께 웃고 장난치며 책장을 넘기다 마지막 장을 펼치는 순간 마음이 멍해지고 할 말을 잃게 됩니다. 방금까지 나와 똑같았던 수잔이 휠체어에 앉아 있습니다.
“이게 바로 너와 나랑 똑같은 수잔의 모습이에요.”
이 문장과 휠체어에 앉은 수잔의 그림이 함께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마음이 먹먹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인권 교육이나 장애 인식 교육에서 자주 접하던 “장애인은 나와 조금 다를 뿐”이라는 피상적인 말보다, 이 그림 한 장이 전해 주는 메시지가 훨씬 강렬했습니다.
([서울=뉴시스]임재희 기자 = 지난 2017년 9월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장애인 학생 학부모 3명(오른쪽)이 특수학교 설립을 요청하며 무릎을 꿇자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토론회 참석자(왼쪽 첫째줄)가 함께 무릎을 꿇고 있다. 2017.09.05. ) limj@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2020년에 개교한 서울서진학교는 2017년 주민 토론회 당시,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날, 장애 학생의 부모님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주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습니다
웃고, 장난치고, 울기도 하는 우리와 같은 수잔이 다닐 학교였는데, 사람들은 왜 그 학교를 혐오 시설이라며 반대했던 걸까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장애인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습니다. 책 속이나 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장애인을 보고는 불쌍하다는 시선을 보내며, 그것으로 양심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현실 속 장애인을 마주하면 당황하고 거부합니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선을 그어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르게 생겼습니다. 형제자매도 서로 다르고, 같은 날 태어난 쌍둥이조차 다르게 생겼습니다. 이런 차이가 차별의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수잔은 단지 휠체어를 통해 이동할 뿐, 우리처럼 웃고 울고 느끼는 사람입니다.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녀를 차별하고 배제한다면, 우리 역시 언젠가 다른 이유로 차별받고 배제당할 수 있습니다. 유색인종은 백인종에게,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에게 차별을 받는 것처럼요.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 않으며, 정상적으로 걷기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노화에 따른 장애가 아니더라도, 장애의 90%는 후천적으로 발생합니다.
즉, 장애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장애인을 우리와 구별 짓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를 배제하는 모순입니다.
“이게 바로 너와 나랑 똑같은 수잔의 모습이에요.”
이 마지막 문장이 전해 주는 울림이, 장애인에게 선을 긋는 우리 모두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수잔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혐오 시설이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