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지만 확실한 개김 목록

by 검피

소소하지만 확실한 개김 목록

-엄마와 나의 ‘적당한 거리’찾기


7년을 옆에서 끼고 살던 남동생네를 베트남으로 떠나보내고 엄마가 우리 집에 와 있다. 주재원으로 베트남에 나간 동생네 가족은 신나고 들떠서 훌쩍 떠났고, 남겨진 76세 노모는 입맛을 잃었다.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것처럼 엄마의 감정을 돌보는 노동은 딸인 내게 떨어졌다. 아들은 엄마가 돌봐야하는 존재, 엄마가 의지하는 존재이고 딸은 엄마를 부양하고 돌봐야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우리 엄마.


“공항에서 너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날따라 네가 참 의지가 되고 듬직하게 보이더라.”


엄마는 칭찬이라고 하는 말이다. 평생 아들만 외치던 엄마가 아들 손자, 손녀까지 봐주면서 그 증세가 더 심해졌으니 딸은 눈에 안 보였겠지. 오죽하면 어릴때부터 같이 다니고 있는(대학생 때랑 나의 공백기가 좀 있긴 했지만) 종교단체에서 내가 엄마 딸인 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었을까.


“어머, 자기가 000딸이야? 몰랐네. 맨날 아들 얘기만 해서 아들만 있는 줄 알았어.”


서울에서 용인 수지가 얼마나 멀다고, 늘 딸 집엔 잘 안 오던 엄마가 이번엔 왔다. 입맛을 잃어서 이것도 저것도 먹기 싫다하는 엄마가 기력을 잃으면 안 되니 일단 뭐라도 한다. 다행히 엄마가 열무김치에 보리밥을 드신다. 그 외 다른 건 안 먹힌다며 그것만 드신다.


“큰이모가 나 입맛 없다고 전복 보냈데 생물이니까 밖에 두면 안되잖아. 가서 좀 가져와라.”


엄마 집에 가서 전복을 가져왔다. 10마리씩 두 봉지다. 가져온 날엔 반찬이 있어서, 전복은 일단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다음 날 한 봉지를 손질해서 버터구이를 했다. 엄마랑, 초6아이랑 먹었다. 다음 날쯤 전복죽을 하려고 했는데 주말에 갈 줄 알았던 엄마가 볼 일이 있다고 올라간단다. 전복, 김치, 복숭아 등등의 짐은 두고 올라 갔다.


(카톡)

나: 전복 손질해서 죽 끓여 놓을게. 한 끼씩 먹게 냉동해 놓을게.

엄마: 놔둬.

나: 생물이라 오래 두면 안돼.

엄마: 그럼, 손질해서 내장째 냉동해놔.

나: 내장 싱싱할 때 요리를 해야지. 전복죽 뭐 어려운 거라고 해 놓을게.

엄마: 냉동해놔. 내가 가서 할게.


손가락 아프다, 어깨 아프다 하면서 굳이 왜 자기가 전복죽을 하겠다는 걸까? 보통은 이런 경우 엄마 뜻대로 둔다.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 결국 엄마는 자기 뜻대로 해야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는 비논리적인 게 아니지만 비논리적인 경우라도 엄마말대로 놔둔다. 그런데 이번에 엄마 말대로 안 했다. 전복죽을 끓였다.

메타포라 13기 첫 시간 줌 수업이 끝나고 몸은 지쳤지만(3시간 집중 이게 쉽냐고요~)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차서 전복죽을 끓이는 내내 콧 노래가 나왔다. 생각해 보면 단순히 글쓰기 학인들을 만난 기쁨만은 아닌 것 같다. 엄마의 뜻을 거슬렀다는 데서 오는 희열도 있었다.

우리 엄마로 말할 것 같으면 자식과 부모 사이에는 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분이다. 아이 어릴 때 엄마가 집에 오면 그 사이 마트가서 장도 보고 오고 했는데, 밖에 나갔다 오면 우리집 가전위치가 바뀌었다. “밥통은 문을 향하면 복이 나가니 반대로 해야 한다, 전자렌지를 여기에 두면 불편하니까 이쪽에 둬라.”를 생각만 한 게 아니라 나 없는 사이 바꿔놓고 말하는 분이다.

적당한 거리.JPG



-그렇게 모두 다름을 알아가고 그에 맞는 손길을 주는 것./ 그렇듯 너와 내가 같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사랑의 시작일지도.

-적당한 햇빛, 적당한 흙, 적당한 물,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우리네 사이처럼!


전소영 작가의 <적당한 거리> 그림책에 나오는 말이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유지해야 할 최소한의 거리!’라고 소개 되어 있는 이 책은 사람 사이 관계 문제를 식물 키우기에 빗대어 보여주는 그림책이다. 싱싱한 초록이들처럼 싱싱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실제로 식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이 책의 비유를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물을 많이 줘도 안 되고 덜 줘도 안 되고 식물의 잎과 흙 상태를 보며 적당히 물을 줘야한다. 그러니까 적당한 거리는 상대방을 면밀히 관찰하고 관계를 조정하는 애를 써야 가능한 것이다.

보통 우리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과는 이런 관계를 잘 맺는 편이다. 친구와 약속도 빈번하다 싶으면 조절하고, 일하는 동료와 거리 유지도 조절할 수 있다. 문제는, 진짜 친밀한 사이거나 친밀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관계, 혹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하는 가까운 사이에서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은 비밀도 없어야 하고 돌봄도 해결하고 무엇이든 다 품어야 하는 나의 분신과 같은 거리낌 없는 사이로 인식된다. 특히 우리 부모세대까지 이런 인식이 강했다. 형제 자매가 5명에서 10명이고 전쟁과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겪으며 자란, 농촌 공동체를 유아시절 내면에 품은 세대. 그들은 가족,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는 거리감 없이 지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거리가 없는 사이는? 딸과 엄마 사이라고 여겨진다.

아들과 아빠는 어색한 걸 기본 세팅으로 한다. 아들은 보통 부모들과 거리를 둔다고 본다. 그런데 딸은 애교 있어야 하고 엄마, 아빠한테 잘하고 특히 엄마하고는 친구처럼 지내야한다. 왜? 딸에게만 거리가 없는 감정 노동을 요구할까?

우리 엄마는 나와 거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딸 집 물건, 딸의 살림은 내 살림이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종교단체에서 보듯이 나를 없는 존재로 배제하기도 한다. 자신의 삶에서 아들은 기둥이고 딸은 부차적이고 대체품인 배제된 존재다. 하지만 자신이 힘들고 외로울 때는 딸의 감정, 돌봄 노동에 기댄다. 딸과 엄마는 밀접한 사이니까, 친구같은 존재니까라는 말에 의지해서 거리를 없애고 훅 들어온다. 엄마 혼자 밀접하게 생각해서 훅 들어오거나, 나를 밀어내고 배제하거나 둘 다 거리가 없긴 마찬가지다.

보통 엄마가 되면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데 난 엄마가 되고 엄마를 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어떻게 어린 내게 그럴 수 있었지? 왜 내게 그랬어?’하는 억울한 마음이 컸다. 생각해 보니 나 또한 엄마와 거리를 두고 생각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엄마의 삶이 옆집 아줌마 이야기라면 이해했을 것 같다. 내 엄마니까, ’나한테 왜 이렇게 했나?‘라는 마음이 있어서 화가 난다.

70넘은 엄마가 나와 거리두기 하는 건 힘들 것 같다. 나라도 엄마와 거리 두기를 해야겠다. 거리 두기의 실천을 위해 전복죽 만들기로 개긴 것처럼 엄마말 안 듣고 개기기를 실천하려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개김은 무엇이 있을까?


-긴 머리를 묶지 않고 풀어헤친다.

(단정하게 묶은 게 좋다고 볼 때마다 말하는 엄마)

-아이한테 아침은 과일이나 빵으로 떼워도 된다.

(밥 안 주면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엄마)

-내 생일과 남편 생일에 온가족이 모이는 모임을 하지 않는다.

(형제도 몇 명 안되는 데 떄때마다 모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이거 말고도 소소하게 더 있을 것 같은데 목록을 10개까지 완성하고 하나씩 달성하면서 엄마와의 적당한 거리를 확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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