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엄마보다 (나이가) 어린데 왜 반말해요?“
아이 6살 때였다. 명절 날 시가에서 어머니, 아이, 내가 같이 과일을 먹고 있는데 아이가 뜬금없이 시어머니에게 질문을 했다.(왜 엄마한테 묻지 않고...)
보통의 부부들이 아내 혹은 남편이 연상이어도 호칭은 ‘여보, 자기, 오빠’로 할지언정 말은 편하게 한다. 우리 부부도 남편에 비해 내가 3살 연상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레 편하게 말을 했고 연애 때부터 그랬던 지라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높임말을 통해 사회관계를 배워가던 아이가 보기에 나이가 많으면 존대를 해야는 데 아빠가 안 그러니 궁금했나 보다. 나이가 많다고 언제나 높임말을 하는 게 아니고 나이가 어리다고 언제나 반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 못하니 아이는 이상했나 보다. 아이의 궁금증이 귀여웠다. 어른에게 당연한 일들이 하나도 당연하지 않아 이유가 궁금한 아이. 과연 시어머니가 어떻게 대답할까? 부부사이니까 친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하시려나, 어떤 말씀을 하시려나 기다리고 있는데 어머님이 "남자니까"라고 하셨다. 남자니까 여자한테 반말을 해도 된다고? 이것은 어느 나라 높임 표현이지? 국어 전공자인 내가 배우지 못한 높임표현법을 사용하는 어머니께 그건 아니라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 했다.
국회에서도, 드라마에서도 여성을 하대하는 사회
2020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한 회사 대표가 당시 최연소 의원이었던 류호정 의원에게 '어이'라고 발언한 사건이 있었다. 대표는 류호정 의원보다 분명 나이가 많다. 그렇지만 국정감사는 공식적인 자리고 이런 곳에서는 서로 존대를 하는 게 우리말 높임 표현의 바른 사용이다. 한 회사를 대표하는 남성이신 그 분은 류호정 의원이 나이가 어리니까 혹은 우리 어머님처럼 상대는 여자고 자신은 남자니까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 걸까? 이런 일이 국감장에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나이 어린 사람, 여성을 자신보다 약한 존재로 보고 반말 즉 하대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온 누나를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그는 누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면서부터 ‘누나’라는 호칭을 떼고 ‘강단이’라는 이름을 부른다. 이에 누나가 거부감을 드러내자 남자주인공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한테 누나라고 하는 남자가 어디있냐?”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은 이승기의 노래 ‘누난 내 여자니까’에도 드러난다. ‘너라고 부를게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요 놀라지 말아요 (중략) 누난 내 여자니까 너는 내 여자니까’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을 사랑하는 남성은 상대에게 ‘너’라고 호칭한다. 반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을 사랑하는 여성은 ‘너’라고 하지 않는다. 연상연하라는 말도 ‘남자가 어리고 여자가 위인 경우’를 칭하지 ‘여성이 어리고 남자가 위인 경우’를 말하지 않는다. 남자가 상위인걸 표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성이 어리고 여성이 위인 경우에도 동등해지려고 ‘누나’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려한다. 여성에 대한 하대가 팽배한 우리 사회 일면을 보여준다.
가족간 평등한 언어생활 어떻게 해야할까?
민우회는 2008년부터 가족간 불평등한 호칭어를 바꾸는 ‘호락호락’ 캠폐인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친족어에는 부계 가부장제 문화에 따른 남존여비 호칭어가 많다. ‘며느리’는 기생(奇生)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가 합쳐진 말로 '내 아들에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오빠의 아내를 지칭하는 '올케'는 '오라비의 겨집(계집의 옛말)'에서 유래한 호칭으로 여필종부의 문화를 반영한다. 또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여동생이나 남동생을 부를 때 사용하는 '아가씨'와 '도련님' 역시 과거 종이 상전을 높여 부르던 호칭이다. ‘외갓집, 외할머니’처럼 모계 친족에게는 ‘외’자를 붙이는 데 이는 부계 중심 호칭이다. 부계를 우리(울타리 안)로 보고 그 바깥은 전부 ‘외’로 보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나는 남동생의 부인에게 00씨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올케라고 하지 않고 길지만 남동생 부인이라고 한다. 또, 우리 가족에게 ‘외’자를 붙이는 게 싫어서 아이에게 남동생은 ‘삼촌’으로 친정 엄마는 ‘서울 할머니’ 시어머니는 ‘창원 할머니’이런 식으로 부른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터졌다. 아이가 아빠 동생도 삼촌이고 엄마 동생도 삼촌이고 같은 거냐고 물었다. 남편이 엄마 동생은 ‘외삼촌’이라고 정정해 주길래 아니라고 그냥 같은 삼촌이라고 했다.
“외삼촌인데 왜 삼촌이라고 해?”
“외자를 붙이는 게 불평등하니까 그렇지. 그건 우리 가족이 아닌 바깥 사람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하는 거란 말이야.”
“뭘 그렇게 따져. 부르던 대로 부르는 거지.”
아이 앞인데도 불구하고 언성이 높아지고 싸움으로 번졌다. 그동안 아이가 내 동생을 삼촌이라 불러도 아무런 제지가 없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외’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해줬는데도 그는 이게 안 이상한가? 원래 부르던 게 문제가 있으면 바꾸는 거지, 그렇게 자신의 부계를 확고히 하고 싶은가?
아묻따 다 같이 평어, 동등한 호칭어 쓰자.
우리말 높임법에는 성별에 따라 존칭을 사용하라고 나와 있지 않다. 상대와 사회적 관계에 따라 존칭표현이 달라질 순 있지만 성별은 기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친족어에는 성별에 따른 불평등한 호칭어가 많이 남아 있다. 사회적 지위도 따져야하고, 나이도 따져야하고 복잡하니까 영어처럼 모두 평어를 쓰면 어떨까? 호칭도 영어처럼 이름을 부르는 거다.
경희대 김진해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언어가 가로막는 동등과 존중의 가치를 실험하기 위해 본인의 강의 시간에는 모두가 반말을 하도록 했다. 학생들이 교수에게 “진행, 과제 다 했어.”라고 하고 선후배 사이에도 호칭은 이름, 어미는 평어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학생들도 점차 익숙해지고 호칭과 말투를 통해 다른 감각을 얻을 수 있음을 배운다.
우리 가족 내에서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시화(시어머니 이름), 저녁 먹었어?”
“종호(남편), 종택(남편 동생)이는 이번 추석에 온데?”
너무 나갔나? 김진해 교수 수업 교실처럼 될 순 없겠지만 친족어 호칭은 바로 잡고 싶다. 이름을 바로 부르진 않아도 도련님 대신 ‘종택 씨’라고 하고 ‘외’자는 모두 떼는 게 당연한 거로. 그러기 위해선 남편과 내가 호칭에 스며있는 불평등함을 공유해야하는 데 이게 참 갈길이 멀다. 모든 에너지와 증빙자료를 끌어 모아 설득할 것인가 투쟁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