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으는 사람 버리는 사람 따로 있다
우리집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산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룸메이트)과 쌓인 걸 보지 못하는 사람(나).
한정된 수납공간을 생각하며 비우기를 실천해보지만 룸메이트의 채우기 속도는 늘 더 빠르다. 평소에는 거북이처럼 느린 녀석이 장바구니 비우는 속도는 잽싸기 그지없다. 손도 아주 커서 영양제도 꼭 6개월 분을 산다.
그러면 나는 이 애물단지를 어디 두지 고민하며 집안을 어슬렁거리다가, 가장 적합한 서랍에 안착시킨다. 그러고 한참이 지나 그 존재가 가물해질 무렵에야 룸메이트가 묻는 것이다.
“언니, 나 저번에 그 영양제 어디 뒀지?”
사실 나 역시 물욕이 적지는 않아서 집의 가구나 옷에 대해서는 지분이 더 많다. 다만 내가 버리고 사고의 반복이라면, 룸메이트의 경우는 사고 또 사고의 반복이라는 사실이 다르다. 관심사도 다양해서 작은 문구류부터 공기청정기 같은 가전, 빈티지 의류에 이르기까지. 참 다채롭게 집 안을 채우고 있다.
또 신기한 건 “이 니트는 이제 버릴까”라고 물으면,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니트에 대한 추억을 갑자기 떠올리더니 “소중하다”라고 선언해 버린다. “소중하다“는 마법의 주문 같아서 이제 안 입는다느니, 너무 해졌다느니 하는 이유 같은 건 쓸모가 없어진다. 아니, 소중하다는데 어떡해.
그렇게 아웅다웅 비우고 채우면서 우리집 물건의 질량은 보존되고 있다. 가끔은 열 개 중에 하나는 버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기고만장해질 얼굴이 떠올라서 글로만 남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