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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윤 Jul 26. 2016

안녕이 있었으면 좋겠어

모든 만남은 끝이 있다는 것을.


안녕 (安寧)
[명사] 아무 탈 없이 편안함. 
[감탄사] 편한 사이에서, 서로 만나거나 헤어질 때 정답게 하는 인사말.          




  산다는 건 만남의 지속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얼굴이 찾아온다. 어제 탔던 택시와는 다른 택시기사와의 만남, 하루 밤 사이 바뀌어버린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얼굴처럼 모든 것은 새롭다. 때로는 익숙했던 얼굴들도 새로 만난 듯 낯선 날이 있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매일 이별을 한다. 어제를 마지막으로 그만둔 것 같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올해 정년퇴임을 하는 교수님과 같은 이별.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말처럼 그만큼 같은 수의 이별을 겪는다. 아니, 어쩌면 이별은 만남보다 조금 더 많을지도.     




  초등학교 5학년의 얇은 다리로는 오래된 아파트의 5층 계단을 오르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날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삐걱대는 문을 열었을 때의 낯선 정적이 차오르는 숨을 쉬이 내뱉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화장실 문지방의 페인트칠을 흉하게 벗겨낸 곳에 있어야 할, 녀석이 없었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지만 사실 전부터 알고 있었다. 날뛰면서 온 집안을 정신없이 헤집어 놓는 바람에 목줄로 묶어놓아야만 했고, 또 알레르기 비염을 악화시키는 서로에게 해로운 동거가 금방 끝나게 될 거라는 것. 머지않아 이 관계가 끝나게 될 것이라고. 단지 그것이 생각보다 조금 빨랐을 뿐이다. 


  그래서였을까. 아니면 현재까지 이어지듯 몸으로 실감하는 게 항상 늦는 나였기 때문일까. 딱히 눈물이 난다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찾아올 거라 생각했던 이별이 조금 빨리 왔을 뿐. 아직 솜털이 보송했던 어린아이의 일상은 그다지 달라질 것이 없었다. 엄마에게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는 걸로 충분했다. 단지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동생의 울음소리가 평소 녀석이 컹컹 짖던 것처럼 집안을 가득 채웠다는 것만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 두 사람분의 울음소리만큼 컸던 것 같다.     




  강아지를 쓰다듬던 보드라운 어린 손이 한동안 허전했던 것처럼 헤어짐은 머리보다 몸이 먼저 체감한다. 내 하루를 온전히 차지하던 만큼 그 공백은 무섭도록 허망하다. 졸업, 퇴사 같은 적당한 핑계를 댈 수 있는 헤어짐이라면 그래도 괜찮다. 미리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거니까. 누군가들과는 여기까지일 것이라고. 그 후에도 남을 사람은 계속해서 남게 되니까. 이처럼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태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모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특히 준비되지 않은 헤어짐은 내 하루를 크게 흔들어놓기도 했다.      

별 생각 없이 건넨 또 보자는 가벼운 기약이 아프도록 무거워지는 때가 있다.

 
   언제까지나 아이 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이별들이 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사람에겐 면역이란 유능한 체계가 있다지만 헤어짐은 항상 고된 일이었다. 좋았던 인연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나쁘게만 여겼던 관계들조차 다르게 흘러갔을 미래를 그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내겐 이별이었다.     

  헤어짐은 필연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한참 전부터 준비하기도 하며, 어떠한 이별들은 미처 인사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운명이 아니었다란 말로 포장할 수 있게끔 자연스럽게 헤어지기도 하고, 관계의 끝을 느껴 직접 끊어내야 할 때도 있었다.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 사람이 미워지기도 하고, 마치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던 것처럼 한 때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끝매듭 지어지는 일들도 빈번하다.

  

  그것은 타인의 선택일 수도, 때론 나의 선택일 수도 있으며, 어떠한 것들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 밖의 것이기도 하다. 정해져 있었던 것 마냥 피할 수 없는 이별이 있고, 이별은 피할 수 없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서서히 고개를 든다.     


  결국 모든 만남 끝에는 이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또한 어린 날의 갑작스러웠던 이별처럼 그것은 내가 그리는 것보다 가까울 수도 있다. 어른이 되어버린 각자의 사정으로,  생명이 있는 인간이기에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찾아오기도 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말없이 나를 떠났던 인연들처럼 나도 언젠가는 말없이, 어쩌면 말할 시간조차 받지 못하고 그들을 떠나야만 할 날. 마냥 좋기도 하고 죽도록 밉기도 했던 이 모든 관계들이 끝나는 날이.        

By. Purple Star.

  

  안녕히


  다만, 그 모든 끝에는 안녕이 있었으면 한다. 두 번 다시 보지 않았으면 했었던 더없이 나쁜 관계도,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하는 관계에서도, 후회로만 점철된 많은 날들에도, 그 한 마디가 있었으면 좋겠다. 속상하고 야속했던 일들을 접어둔 채, 고맙고 감사했던 진심을 가득   담은 마음으로 다신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너의 안녕을 빌어줄 수 있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수많은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기엔 어쩌면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도 되지만, 그래도 그거면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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