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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윤 May 31. 2016

미련한 내가 되는 날

나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조급증 (躁急症) [명사] 
  조급해하는 버릇이나 마음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 
                                                                 - 노인과 바다 中

  
  흔히 낚시는 인내력과의 싸움이라고 한다. 조급한 마음을 없애고 잡념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찌의 흔들림을 보며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시커먼 속내를 감춘 물 안의 고기가 언제 미끼를 물지 기약하나 없지만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이 낚시다. 철저한 준비가 갖춰졌다 하더라도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낚싯대를 움직인다면 고기는 낚이지 않는다. 그런 것이 낚시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은 80일이 넘는 시간 동안 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어부다. 자신의 친구가 되어준 소년에게 동정받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꿈속에서 아프리카의 사자 꿈을 꾸며 다시 배를 띄운다.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기를 못 잡은 날이 하루하루 쌓여가도, 다른 어부가 매일 같이 커다란 고기를 낚아도 그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조급증을 ‘앓고’ 있다. 인간의 수명은 늘어가고 있지만 그들이 원하는 성공의 시기는 더욱 빨라졌다. 모두가 느긋함을 겁낸다.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을 겁낸다. 조금 더 빨리, 더욱더 빠른 성공만을 원하고 있다. 심지어 ‘성공’의 준비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된다. 무엇이 이토록 급한 걸까.

  잔인한 나날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에 배 아파하고 타인의 실패에서 안도감을 얻는 나 자신에 소름이 끼치는 날들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앓고 있는 조급증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갉아먹는다. 수많은 시험들 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는 내가 있다. 당장 오늘 결과를 내지 못한 것을 자신의 무능력함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리고는 포기한다. 이 길이 아니었다며. 항상 모든 것을 책임진다. 너는 이제 어리지 않다며 성인으로서 취급받는다. 준비되지 않은 채 찾아온 어른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진다. 그런데 이럴 수가, 어른에게는 아파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단다.

   하루를 지내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나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세상. 이웃에 무관심하고, 사람에 무관심하며, 자신을 방치하는 그런 세상이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웃으며 보내다가도 외로움이 본래의 상처가 터지듯 밀려오기도 한다. 얼마 전 올렸던 글 중 고독의 사전적 정의는 상황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떨어져 있는 듯이‘ 떨어져 있어서가 아닌 그런 듯이 느끼기 때문에 고독인 것이다. 아프고 고독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여기까지 온 것 같다. 그저 남들처럼 그래도 괜찮다, 하며 그렇게.

  힘이 든다고, 아프다고 말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아픔을 논하는 것은 나약하다고 치부되는 현실이다. 그래서 미친 듯이 위로가 되는 말을 미친 듯이 찾아 헤맨다. 모두가 그렇다는 적당한 핑계로 아픈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많은 친구들이 아파한다. 남다를 것 없는 아픔이다. 모두가 똑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몇 권의 자기개발서들이 그럴싸한 포장 속에 똑같은 말들을 반복한다. 이미 알고 있던 답을 남들이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것이 가끔은 서글프다. 그러면서도 결국 다시 또 위로를 찾는다. 그게 아니면 너무 힘이 들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받고 싶어서. 나는 잘하고 있는 거라고 조금 힘들면 곧 괜찮아질 거라고. 억누르고 참는 것이다. 그렇게 잘하고 있다는 그럴듯한 위로의 말로 스스로를 속이며 고독한 자신을 달랜다. 어쩌면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실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잘 알고 있다. 번지르르하게 늘어놓은 말들을 주워 담는다 하더라도 막상 마음이 쉽게 편안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데 말하고 싶다. 


난 그러고 있다고
아프다고

  매일같이 여유를 갖자고 다짐해도 조급함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기에. 멀어져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작아질수록 내 모습도 작아지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벌써 미래까지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유가 독이 될지도 모르는 세상이지만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by. Purple Star.


  설교 듣는 건 싫어하지만, 어떤 조언 없이는 너무 쉽게 흔들리는 내가 찾던 위로들을 직접 쓰고 있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인 산티아고 같이 자신의 꿈만을 쫓는 어른아이는 이 현실에서 미련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한 내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나를 꿈꾼다. 모두가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에서 나 하나쯤은 미련한 채 남아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닿을 것 같지 않은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어찌보면 미련할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 나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또 부족한 사람이라 지친 어느 누군가에게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고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위로를 찾던 그 날 문득, 우리처럼 아파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고 느꼈던 것처럼.

   위로는 조심스럽다. 섣부른 위로가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생각한다. 미련한 나라서 위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프다 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지 못하는 사람들을, 솔직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 막연하게 동경하던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미련해서, 부족해서 그 결핍이 다른 사람에게 위로와 안도를 줄 수 있는 내가. 누군가의 팍팍한 하루를 진심으로 함께 아파해줄 수 있는 사람을 순수하게 동경하던 나를 미련스럽게 고집하는 내가 되었으면 한다. 


  타인의 행복에 기뻐하고

  타인의 슬픔에 아파하는

  아픈 것은 아프다 말할 수 있는

  미련한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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