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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윤 May 20. 2016

괜찮아야만 하는 너에게

위로가 되고 싶은 나라서.

  고독[孤獨]
  홀로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함

 

그 적막은 어느 것보다도 소란스러운 것이었다.




  그 영화를 다시 봤다. 때마침 놀러 온 너의 집에서 선약 때문에 네가 자리를 비운 날. 다시 한 번 봐야지 하며 몇 번을 미루었던 그 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오랜만에 본 영화는 기억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짧은 단면들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의 단연 백미인 엔딩 씬은 품고 있던 기대감을 충분히 채워주었다. 버릇처럼 OST와 함께 흘러가는 엔딩 크레딧을 멍하니 바라보며 영화를 곱씹었다. 아직 단물이 남아 있었는지, 맛있는 요리를 먹은 미식가라도 된 양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정신없이 보다 보니 문득 눈이 간 시계는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TV를 끄기 전 먼저 요란스레 움직이며 편안한 자세를 찾았다. 리모컨에 반응한 TV가 얇은 선 한 줄을 만들어냈다가 어두워졌다.     
 

  적막. 방금 전까지 똑똑하게 들려오던 영화 주인공들의 대사들이 마치 없었던 일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그 무렵에 날카롭게 꽂혀오는 시계 소리도, 나를 위해 하루 종일 힘겹게 일하다 쓰러진 컴퓨터의 웅웅 거리는 코골이도 없었다.  늘 이 시간이면 고됐던 하루를 자랑하듯 요란스럽게 도어록을 두드려대는 문 밖 옆집의 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작정 찾아와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이불속으로 발을 들이밀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잠드는 녀석도 없었다. 소름 끼치는 적막에 내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오늘은, 그러해야 될 것 만 같았다.
 

  귀가 아팠다. 적막이 너무 시끄러워서. 그 적막은 어느 것보다도 소란스러운 것이었다. 수 만 가지 생각들이 머리 위에서 부딪혀 흩어지며 비처럼 나를 적셨다. 몸부림은 불필요했다. 잡념들로부터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이 먼저 느꼈다. 아, 하고 짧은 탄식과 함께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TV를 끄는 게 아니었는데. 다시 몸을 일으켜 TV를 켜는 것은 미련한 도피일 것이다. 빛 하나 없는 아른거리는 어둠에 초점을 맞췄다. 늘 덮고 자던 이불은 오늘따라 유독 무거웠다. 침대 대신 사용하는 소파는 천천히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대로 있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두려웠다.      
 

  그 날은, 네가 없던 날 너의 집이었다.     


  

그 밤.




       괜찮아?        
 

  참으로 편한 말이었다. 낮은 억양과 함께하는 그 가벼운 위로는 내가 할 일은 모두 했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내가 맡은 역할을, 이만하면 충분히 신경 써주었다는 썩 그럴듯한 적절한 핑계가 되었다. 설령 그것이 아무런 무게가 없는 가벼운 안부인사 같은 것이었을지라도. 그걸로 충분했다. 괜찮다는 너의 말이 그냥 듣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편하고자 했던 말들이었던 것 같다.     
 

  섣부른 위로와 공감은 상대를 더 아프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딱 이 정도,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 여야만 했다. 네가 짊어진 무게를 덜어낼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한 발 물러선 곳에서 힘들어하는 너를 보며 같이 아파해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참, 비겁한 변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괜찮지 않았다. 아니, 괜찮을 수가 없었다. 처음 가위에 눌렸던 날처럼 식은땀이 났다. 등 밑의 소파는 늪이라도 되는 것 마냥,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목을 죄어 오는 이불의 무게에 숨이 턱 막혔다. 무너져가는 날 위해 손을 뻗어줄 사람, 아니 살려달라는 비명을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고독이었다. 겨울바람처럼 몰아치는 생각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이것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은 한참 지난 후의 일이었다. 슬픈 표정을 그려내며 내뱉었던 ‘괜찮지?‘라는 말이 돌아와 심장을 찔러댔다. 거기에는 하찮은 관심에 상처받는 내가 있었다. 네가 있었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혼자 두고 간 것이 미안하다면서 돌아온 네가 누르는 비밀번호 소리는 어렵지 않게 나를 깨웠다. 현관문 센서등의 불빛 아래에서 신발을 벗으며, 자고 있었냐 미안하다는 말에 방금 전까지 허우적거리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대답하는 일뿐이었다. 그때 방 안이 어두워서 다행이었다. 어색한 웃음은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 자연스레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온 네가 소파 아래 바닥에 눕기 전에 나는 꺼진 TV를 켰다. 좀 전의 끔찍했던 것들이 달아난 것은 말없이 핸드폰을 보고 있던 너였을까, 요란스럽게 떠들고 있는 TV였을까.     
 

  그러니까 그 날은, 네가 눕는 자리에서의 일이었다.  
    

  그래도 변한 것은 없다.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괜찮지?” 하고 묻는 일이 전부니까. 괜찮다는 말과 괜찮은 미소를 만들어 보이는 네게 지금도 나는 물을 뿐이다.


   “괜찮아?”
   “응”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안다. 괜찮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안다. 가벼운 위로는 와 닿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결국 너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는 너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싸웠던 그날 밤 같은 시간들 속에서 매일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고 있을 네가 얼마나 힘이 들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안다. 그러니 나는 네게 물을 것이다.

  그 뒤에 따를 대답은 마찬가지로 뻔하다. “응.” 짧은 순간만이라도, 괜찮아야 만하기에 상대를 속이는 네가 그 순간만이라도 스스로에게 속았으면 한다. 1초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괜찮은 네가 되었으면 해서. 괜찮은 찰나의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해 할 수 있는 거라곤 이게 전부라, 그냥 이 옆에 앉아 나는 또 묻는다.     

  
   “괜찮아?”


by. Purple 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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