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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윤 Dec 02. 2015

참 나쁜 사람이다

네가 행복해지지 않길.

  참 나쁜 사람이다.     


  ‘감정의 쓰레기통’

  어디선가 들었던 문구가 참 절묘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울을 담는 박스’ 정도가 적당했을 것이다. 그랬다. 너는 슬픔과 분노 등을 내게 떠넘겼다. 네게서 연락이 오는 것은 그러한 것들을 버려야 할 때였다. 네게서 기쁨을 나눠 받은 적은 없었다. 우울을 담은 박스는 조금씩 찢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미 모든 것이 쏟아져 나온 뒤였다. 주저앉아 박스가 토해낸 것을 모아 줍던 손이 시렸다.     

  
  네게서 그림자를 직접 받았다. 그것이 내 것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언제쯤이었을까. 단 한 번 듣지 못한 너의 빛을 남에게서 들었을 때였을까. 밝은 네 얼굴을 멀리서 바라봤을 때, 내 그림자가 조금 진해졌다는 것을 봤을 때였을까. 그 이유가 네게 받은 그림자 때문인지, 네 빛을 탐하는 내가 있기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오래도록 고민했다. 네게서 거리를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이 느꼈다. 그것은 밖으로 내지르지 못하는 비명소리였을지도 모른다. 나 자신이 본능보다 이성이 앞서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때 알게 되었다. 결국 너의 전화를 받은 나는 먼 길을 나선다. 사람 관계는 그런 것이 아니랄지라도 참으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찾는 사람은 기껏해야 전화비로, 사람을 얻고, 원하던 술을 얻고, 우울을 게워내는 후련함을 얻어가니 말이다.     

  
  게워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오랜 기간 고민하던 내가 떠올린 사람이 너였다는 것은 조금의 보상심리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받은 만큼 돌려내라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네가 되었으면 했다. 작은 방을 큼지막하게 울리는 스피커폰 기능은 참 공허하다고 느꼈다. 괜찮았다. 다시 삼키면 되니까. 그렇게 잘해왔으니까. 며칠 뒤 걸려올 전화에는 심심했다  라는 적절한 변명이 있기 때문에 걱정되지 않았다. 단지,

  
  참 나쁜 사람이다.     


  
  결핍을 채우는 일은 꽤 어려운 일이었다. 외로움으로 텅 비어버린 것을 채우기 위한 날들이 얼마나 됐을까.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없이 늘어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지내다 보면, 너는  어느덧 내 옆에 와 있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변한 것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그것이 좋았다. 혹시라도 네가 나의 상태변화에 대해 묻기라도 한다면, 눌러두었던 그것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올 테니까. 나는 다시 듣기만 하면 되니까. 편했다.     

  
  긴박한 사이렌 소리는 아득했다. 기억의 한 켠을 비집고 나오듯. 멀리 보이는 대교 위의 불빛들은 모두가 급했다. 거기에 더해진 느긋한 재즈음악의 맛은 뭐랄까. 오묘하고도 몽롱한 것이었다. 음악이 다섯  번쯤 바뀌었을 때 멋쩍은 듯 머리를 긁으며 도착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덕에 추위를 참을 수 있었다. 어두웠기 때문일 거다. 부쩍 짙어진 내 다크서클을 보지 못한 건.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너는 내 맞은편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작게 내뱉은 한숨이 맞바람에 섞여 돌아왔다.       

 
  참 나쁜 사람이다.     

  
  평소와는 다른 것이 낯설었다. 가로등 불빛 덕분인지 유달리 반짝이는 눈이 부담스러웠다. 연신 핸드폰의 불빛을 내 눈앞에 들이댔다. 그 곳에는 웃고 있는 너의 모습이 가득했다. 오랜 시간 속 썩이던 일들이 해결된 너의 미소는 참으로 청량했다. 그래서 였을까. 평소와는 다른 그 고조된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너의 빛은 물밀 듯 한 번에 쏟아져왔다. 어쩌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유난히 달이 밝아서일까. 집에 돌아왔을 때 눈밑의 다크서클은 더욱 짙어져 있었다. 빛을 바라보다가 눈이 멀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서둘러 돌아왔다. 자꾸만 속이 뒤틀렸다.     

  
  참 나쁜 사람이다.     

  
  고개를 돌렸다. 별처럼 반짝이는 너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괴로웠다. 외로움이 만들어낸 결핍은 전혀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전하지 못한 나의 말 때문이 아니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을 뱉어내는 것은 너뿐만이 아니었다. 너의 우울에서 나는 같은 것을 느꼈다. 그 덕에 외롭지 않았다.
   
  빛을 찾은 너는 내게 고독을 안겼다. 내가 시기했던 것은 빛을 나누지 않는 너의 모습이 아니었나 보다. 단지 네가 행복해질까 봐,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맴돌까 봐, 불안했던 것 같다. 너의 행복에 질투를 느끼며 이 곳을 떠나지 못하는 내가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네가 슬픔을 알고, 우울을 뱉어내어 공허한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기를 바라는. 다시금 네가 불행해져 너의 외로움에서 스스로의 필요성을 느끼며 결핍을 채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나를 위해 네가 행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나는,

  
 참 나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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