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불면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덤윤 Jan 24. 2019

잠 없는 밤

불면즈음에



까치발이 버릇이 됐다. 늦은 시간 귀가엔 나 때문에 깨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아빠는 가끔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새벽까지 눈만 감은 채 뒤척이셨고, 엄마는 잠귀가 밝아 작은 소리에도 곧장 깨곤 했다. 종종 두 분이 술을 드시고 주무실 때면 깊은 잠에 빠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술을 마시지 않으니까 해당되지 않겠지. 그러니까 누군가 묻는다면, 이건 유전때문이라고 말해야겠다.

 

하루 치 습기가 고스란히 쌓인 불쾌한 자리에 눕는다. 이불에 묻은 어제의 온기와 등 밑의 뜨거운 전기장판의 사이. 방금 씻었는데, 늘 그렇듯이 오래도 씻었는데. 대신 누워있던 눅눅한 공기는 쉽사리 비켜주지 않는다. 그 끈적임이 좋아 애써 비집어 밀어넣는 몸뚱이. 드문 외출을 할 땐, 이빨이 딱딱거릴 걸 알면서도 굳이 얇은 외투를 챙겼다. 그럼에도 늘 고집하는 두터운 이불. 밤새 걷어차릴 지 언정 사계절을 이어가는 문자 그대로의 고집이다. 온도는 어디쯤 놓일까. 머리 맡 놓인 전기장판의 리모콘을 시계방향으로 돌린다. 코 끝이 훌쩍인다. 


의식처럼 행해지는 버릇들. 우선 베개를 털어낸다. 어제 혹은 그제 심어진 머리카락들이 패잔병처럼 쓸려나간다. 물렁한 볼을 치대며, 굽은 오른쪽 어깨를 베고 눕는다. 지친 우울함을 다리 사이에 끼고 웅크린다. 다시 한참을 뒤척인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은 채 몸을 쭉 펴고 바로 눕는다. 오래도록 찾아왔던 정답이 죽음의 자세를 닮았나, 하곤 생각한다. 감은 눈끝이 따가워온다.               



꼭, 정말과 같은 언어를 좋아한다. 진실을 내포하는 단어들. 오늘은 꼭 일찍 누워야지, 정말 푹 자야지 했던 다짐 혹은 거짓이다. 잘 잤니에 답하는 습관적 거짓말. 밤은 솔직해야지 하는 믿음. 달엔 솔직해야지. 죄송해요, 어울리지 않는 낮을 두르려고 커피를 마셨어요. 견디기 버거워서요. 아, 두 잔이에요. 


프로이트는 무의식에 대해 말했다. 언젠간 기대였었던 미련들은 밤이면 익숙한 고개를 들었다. 그것들이 두려워 나는 잠을 한 근쯤 썰어두었다. 


게으른 밤을 짊어질 내일이 걱정이다. 


다시,               

기대를 버려야지.     

기대에 취해야지               

 낡은 얼굴을 깨워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송구한 농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