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아무 때나 불면시
초저녁 해가 먼저 누울 쯤부터
꼿꼿이 서 자신을 알리는 깃발에서
증조가 보이더니 마침내 꾸물거렸지
육중한 유리로 이루어진 자동문은
불편한 소리를 내뱉으며 미세하게
오른쪽 문이 먼저 움직여
눈치를 보다 뒤쳐진 순간에, 대칭이 어긋난 바깥바람이
한 움큼 쥔 부스러기와 함께 안으로,
안으로 몸을 피했어
고요한 손님의 노크소리에
흔들린 침대와 길어진 햇살이 자꾸만 재촉해서
기울어진 시간을 체감했지
구름은 하늘에 있어야 한다는,
하늘에 있기에 주어진 이름이
밤새 뒤집힌 하루에 바닥으로 쏟아졌지
손바닥처럼 엎어진 그 단순한 모순에
기가 막혔어
숨을 느리게 쉬었지
넉가래가 쌓은 새벽의 흔적 옆으로
발 사이로 세운 작은 외로움
그늘 안에 숨은 그를 지켜줬으면 해
그리고 마침내 함께 녹아내렸으면 해
기대를 품었던 땅에서 처음으로 내뱉은 농담
여기라면,
나는 초라한 시인을 꿈꿨을 거란
궁상맞은 변명이 움텄어
딱지 앉은 시, 그리고 순백의 길에는
용서가 쌓였지
뚜껑 덮기를 잊은 노트북 위,
밤새 쌓인 눈을 따르다보니
이처럼 마침표 없는 긴 문장이 되었어
펼쳐두길 잘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