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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윤 Dec 13. 2018

숙성된 기대치

비장한 출사표는 아니더라도

친애하는 당신께


기대는 첫 자음 'ㄱ'처럼 두 개의 뾰족한 끝을 가져요.


제게 기대에 대한 기역은 늘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요. 무거운 머리를 견뎌내지 못하고 고꾸라져 삼각형처럼 날카로워요. 엎어진 기대가 들이미는 건 만족일까요, 실망일까요. 때론 맨발로 밟은 레고보다 더한 고통을 주기에, 함정처럼 곳곳에 뿌려진 날 선 기대를 밟지 않아요. 밑동이 없어도 설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래요.


숙성되어 깊은 맛을 주는 것들이 있어요. 푹 익은 김치찜이나 오래된 와인과 오랜 시간 불리는 노래, 그리고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제겐 그래요. 어제 발자국을 남겼던 자리에, 오늘 다시 도장을 찍는 사람들을 봐요. 그림자의 품에서 아직 녹지 못한 눈에 멈춰 서야만 하는 제겐 빠른 걸음을 미처 따라갈 자신이 없어요. 이 짧은 다리 때문은 아니에요. 정말요.


그러니까, 기대는 두려운 장난이에요. 판도라의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았다는 희망과 닮았을까요. 제게 있었던 숙성된 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오랜 친구 P는 호들갑을 떨었어요. 아직 벚꽃도 피지 않았던 이른 봄부터 기다리던 영화를 보고 왔다면서요. 눈물을 한껏 쏟아냈다고 했어요. 떠나간 이와 남겨진 이, 제가 관심 있는 사후세계와 P가 좋아하는 노래와 따뜻한 이야기. 우리의 잦은 통화 때마다 독촉하는 친구의 말에 저는 기어코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러 갔어요. 물론 그것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의 전부는 아니에요.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아니 누구라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사의 신작이었으니까요. 아마 언젠가는 보게 됐을 거예요. 친구의 극찬은 결국 먹을 샐러드 위에 뿌려진 드레싱 같았죠. 다르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우리였지만, 영화 취향은 교집합이 꽤 많았거든요. 맞아요, 기대가 숙성되고 있었죠.


영화를 보고 나와, 미처 영화관을 빠져나오기도 전에 전화를 걸었어요. 친구가 무슨 작업 중이었다고 한 것 같은데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때부터 우린 토론을 했어요. 아니 재판을 했던 것 같아요. 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도착하기 전까지 피고인 그 영화에 대한 혹평을 늘어놓았죠. 친구는 열심히 자신이 감명받은 부분을 이야기하며 변호했지만, 우리의 의견이 일치하진 못했어요. 판사는 따로 없었지만, 영화에 대한 평점이 펼 네 개를 웃도는 걸 보면 제가 패소했을 것 같네요. 영화평에 달린 극찬하는 글들과 흥행 기록을 보면 의문의 여지가 없네요. 차후에 다시 한 번 봐야겠어요. 당신께도 추천드릴께요.


사실 '영알못'의 늦은 변명 같지만, 그리 나쁜 영화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노래와 나쁘지 않았던 연출. 관객을 감동시키고 울리기에 충분한 영화였어요. 다만, P와의 통화에 물든 기대 때문이었을까요. 무려 반년 치의 기대가 쌓여서, 그래 얼마나 좋은 영화인지 내가 봐줄게, 같은 오만한 자세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다시 건방져 보자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기대는 각졌지만 빠르게 굴러서 눈덩이처럼 커지거든요. 예쁜 눈사람의 밑동이 될지, 얼굴이 될지, 혹은 뭉쳐진 덩어리가 제 얼굴로 날아들지는 모르는 일이니까요.


눈, 철도


아직 하고 싶은 말은 시작도 못 했는데 길어졌네요. 제겐 오래된 기대가 있어요. 십여 년을 꾹 압축해서 눌러 담으며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로망 같은 거예요. 중학생 즈음 감명 깊게 봤던 영화 두 편에 공통점이 있어요. 첫째로 일본 영화라는 것과 두 번째로 똑같은 지역을 배경을 했다는 점이에요.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영화들이었어요. 어린 마음에 눈 밭에 둘러싸인 두 주인공들이 부러웠어요. 스러질 것 같이 쌓인 아슬한 눈을 밟는 신발의 소리와 자국들.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눈의 언덕과 그 위에 새겨진 자전거 흔적 혹은 철길. 발길이 드문 소외된 역과 차분한 도서관에서 느리게 흐르는 시간.


다행히 저는 따뜻한 사람이 아니라서, 담아둔 기대가 눈처럼 녹지 않았어요. 감히 들여다보기 두려울 만큼 커져버려 문제였죠. 쌓인 시간만큼 숙성된 덩어리가 이제는 감추기도 힘들 만큼 거대해서요. 그래서 이렇게 글을 두고 떠나려고요. 뻔한 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라는 핑계를 적어요. 


오랜 기대가 생겨난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 두려워요. 미처 다 메우지 못해서 드러난 텅 빈 저를 보게 될까 봐요. 여태껏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까 무서워 접어뒀지만, 이젠 곰팡이 진 나를 들여다보러 가요. 누룩처럼 될지도 모르잖아요.


어느 여우가 말했던 것처럼 기다리는 일은 제법 즐거웠어요. 기대는 길들여지지 않았지만요. 날뛰는 기대는 어디에 닿을까요. 눈의 나라로 향하는 비장한 출사표는 아니지만, 여기에 남겨요.


여우가 사는 곳. 눈 위의 여우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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