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가 있는 밤 Apr 17. 2021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프로포즈 데이>

‘윤년 윤달에는 내가 제레미에게 프로포즈할 거에요’ by 애나

아일랜드 전통 중에 윤년 2월 29일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청혼하는 관습이 있다. 주인공 ‘애나’는 이 날을 맞아 남자친구 ‘제레미’에게 청혼하기로 결심한다. 제레미가 4년간 연애했음에도 결혼하자는 말을 애나에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의 원제는 <Leap Year>, 한국어로 ‘윤년’이다. 이것이 아일랜드 전통과 스토리를 더 잘 나타내도록 국내에서 번역될 때 <프로포즈 데이>로 바뀌었다.


영화의 주된 스토리는 애나가 아일랜드로 제레미를 찾아서 가면서 벌어지는 일화들이다. 주로 애나가 수난시대를 겪는 내용이다. 하필 제레미가 아일랜드로 세미나를 가서 애나가 윤년 29일에 딱 맞게 그를 만나러 가는 것인데, 날씨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애나는 영화 초반부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제레미가 있는 더블린으로 가러 험난한 여행길을 거친다.


그 와중에 애나는 ‘데코’라는 아일랜드 딩글 토박이 청년을 만난다. 이 두 사람이 ‘싸우면서 정드는’ 것도 영화의 주된 스토리 중 하나이다. 데코는 굉장히 시니컬하게 묘사된다. 그는 애나와 사사건건 부딪히고, 제레미에게 청혼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무릅쓰는 애나를 비웃기도 한다. 그럼에도 애나는 그의 말에도 굳건히 자신의 여정을 떠나며 데코를 냉소적인 사람이라 비판한다.


애나가 제레미를 만나기 위해 어떤 수난들을 겪는지를 보면 영화의 웃픈 코미디적 성격이 잘 드러난다. 먼저 애나가 탄 비행기는 더블린에 직항으로 착륙 예정이었지만,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비행기가 한참 흔들리다 우회한다. 이 자체만으로도 위험한데 폭풍우가 치는 바람에 애나는 하루 동안 공항에 발이 묶인다. 그럼에도 목표에 대한 의지가 강한 애나는 어렵게 페리 선착장을 찾아가는데, 역시 배 운항편이 모두 취소됐다. 그래서 애나는 어선을 잡아타고 폭풍우를 뚫다가 결국 더블린에 못 가고 딩고에 임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녀가 여관 주인 데코를 만나고, 마치 톰과 제리 같은 여정을 함께 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여행은 그 자체로 코미디이다. 두 사람의 목적은 서로 다르다. 애나는 더블린에 가려고 하고, 데코는 순전히 가게 임대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애나를 태워주고 운임을 받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이 친절하게 함께 차에 탈 리 없었다. 한참 싸우다가 소 떼를 마주치고, 애나가 소들을 반대쪽으로 모는 동안 데코의 올드 카가 브레이크가 풀려 언덕에서 쭉 미끄러진다. 이것 때문에 두 사람은 유일한 교통수단인 차도 잃어버리고, 말 한 마디 없이 걸어간다. 두 사람이 도보로 걸어가는 안타까운 상황에서 화난 애나가 앞서가는 모습, 그럼에도 뒤에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아일랜드의 모습이 대비되며 역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첫 번째 계기는 애나가 가방을 도둑맞은 사건이다. 이때 데코가 애나의 가방을 찾아주면서 애나가 데코를 다시 보게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두 사람이 잘 맞진 않았는데, 더블린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애나와 데코가 아일랜드 7대 경이의 카발리에리 성을 오르면서 사이가 나아진다. 이때 영화에 상징이 한 가지 등장한다. 바로 그들이 오른 성에 얽힌 전설이다. 정략 약혼을 앞둔 여자, 그녀를 사랑했던 무사가 사랑의 도주를 하다 성에 오른 후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는 전설로 영화에서 소개된다. 이것은 마치 데코와 애나가 성에 오른 것과 비슷하다. 물론 이때 데코는 애나를 사랑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로코 영화의 복선일까?


어쨌든 애나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또 기차를 놓치고, 성에서 언덕을 내려오다 흙탕물도 뒤집어쓴다. 별수 없이 애나는 또 데코와 여관에서 머무르게 되는데, 이때 두 사람은 하나의 침대를 놓고 또 투닥거린다. 여기서 재밌는 장면이 하나 나온다. 동전 던지기로 침대를 누가 쓸지 정하기로 했는데, 데코는 ‘앞면이 나와도 데코가 이기고 뒷면이 나오면 애나가 지는’ 룰을 제안한다. 이 룰에 애나가 넘어가서 결국 침대는 데코의 차지가 된다. 코믹함을 연출하고, 데코의 가끔은 악동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히 영화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애나와 데코가 방금 말한 여관에 체크인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이다. 여관 주인 분이 부부가 아닌 사람들은 한 방을 쓰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애나와 데코는 부부 코스프레를 한다. 방금 전까지 기차를 놓친 일을 갖고 투닥대던 두 사람이 여관에 머물기 위해 서로를 ‘펌프킨, 달링, 선샤인’ 등으로 부르는 모습이 코믹하다.


이렇듯 티격대면서 친해진 것도 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개선된 것은 결정적으로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가능했다. 특히 데코가 사랑에 냉소적 모습을 보였던 것은 이전 약혼녀가 그를 두고 바 동업 동기와 더블린으로 떠났기 때문이었다. 이때 약혼녀는 데코의 어머니의 반지를 가져갔다. 데코와 애나는 비를 피해 우연히 들어간 결혼식장에서 과거를 털어놓는다. 이때 ‘리버댄스’를 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춤추면서 친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둘은 늦은 밤까지 리버댄스를 추고 달빛이 비추는 호숫가에서 서로에 대한 정을 느낀다.


그럼에도 애나는 제레미를 만나러 더블린으로 가는 것이 맞다. 그래서 데코가 애나에게 하는 말이 있다.

“(당신한테) 신경 쓴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맞는 말이다. 더군다나 애나는 윤년에 고백하기 위해 미국에서 아일랜드까지, 기상 상황과 로드 트립을 뚫고 모험을 무릅썼지 않은가.

하지만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리 말하자면, 영화는 약혼자가 있는 애나가 제레미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데코와 만나는 스토리가 아니다. 제레미에겐 반전이 있으니 글을 더 읽어보자.


*스포 있습니다*


투닥대고, 서로의 과거를 이야기하다 보면 정이 든다 했던가. 데클런과 애나도 점차 정이 들고 이 감정은 호감으로 바뀐다. 하지만 두 사람은 목적지가 다르다. 애나는 더블린에 도착해 기다리던 제레미의 청혼을 받고, 데클런은 옛 약혼녀와의 앙금을 털어내며 어머니의 반지를 돌려받는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다. 두 사람은 서로 헤어질 때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애나는 제레미의 청혼을 받으면서도 문 밖에 쓸쓸하게 서 있는 데코를 보고, 데코는 애나가 청혼을 받는 모습을 보며 쓸쓸히 돌아선다. 더블린에 도착해서도 헤어지자 하니 미련 가득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의 모습이 같다. 아직 두 사람에게는 남아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에 표면적으로 애나와 데코는 그간 원했던 것을 모두 이룬 듯하다. 애나는 기다리던 아파트에 제레미와 부부가 되어 입주하고, 데코는 약혼녀와의 슬픈 과거를 떨치고 마을 사람들의 기부로 가게 빚도 갚는다. 특히 마을 사람들이 데코의 바를 지켜주기 위해 한 푼씩 모아 기부하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이 덕에 데코의 가게는 더 성공하고, 그는 눈코뜰 새 없는 주방장으로 요리에 전념한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면 두 사람이 헤어질 때 보였던 아쉬움이 의미가 없지 않나. 이때 애나는 청혼에 얽힌 반전을 알게 된다. 바로 제레미가 기다리던 아파트에 당첨되기 위해 애나에게 청혼을 했다는 것. 결혼을 한 부부에게만 집을 준다는 판매인의 생각 때문이었다. 여기서 애나는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녀는 2월 29일에 맞춰 도착하려고 산전수전 여행길을 넘었는데, 제레미는 그녀를 사랑해서 청혼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애나가 제레미를 생각했던 만큼 제레미는 애나를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서 영화의 상징이 등장한다. 앞서 나온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애나와 데코는 여행길 동안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무엇을 가장 먼저 챙겨나올 것인가’를 두고 논의했다. 이때 애나는 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파트 입주날 제레미의 이야기를 듣고 애나는 경보기를 울린다. 여기서 제레미는 애나보다 귀중품을 먼저 챙긴다. 그리고 애나는 물건을 한 가지도 챙기지 않고 나온다. 이제 애나는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기다리던 아파트도, 제레미의 청혼도 아닌 데코였다.


그래서 애나는 또 먼 길을 날아 데코에게 간다. 그리고 <프러포즈 데이>의 제목과 같은 엔딩이 펼쳐진다. 바로 애나가 데코에게 그의 바에서 먼저 청혼을 한 것이다. Leap Year의 정확한 시기는 아니었지만, 애나는 먼저 용기 내서 데코에게 마음을 표현한다.


저랑 아무런 계획 없이 같이 지내볼래요?


이전에 톰과 제리 같던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다니. 그런데 영화는 여기서 한 번 더 트위스트를 준다. 데코가 말없이 돌아선 것이다. 여기에 상처받은 애나는 혼자 바닷가 앞에 서 있다.


하지만 데코가 예측 불가의 사람이었던 것 기억하는가. 그는 애나의 청혼을 거절한 것이 아니라 관객 분들의 예상대로 반지를 가지러 들어간 것이었다. 이 반지가 어떤 것일지 독자 분들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로맨틱 코미디 무비들 중에서도 인상적이라 꼽히는 데코의 청혼 대사가 나온다.


청혼은 거절이에요. 당신하고 아무런 계획도 안 짤 수 없어요. 당신하고 계획을 짤 거니까.


계획을 중시하던 애나는 데코에게 더이상 계획 없는 사랑을 하자고 말하고, 계획을 싫어하던 데코는 애나와 인생의 플랜을 세우고 싶다고 말한다. 이처럼 영화에서는 상충되는 두 사람의 성격부터 엔딩의 청혼 대사까지 아이러니를 적절히 활용한다. 두 사람이 과거에 어땠건 간에 성공적인 청혼 후 데코와 애나는 노을이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입을 맞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한다면 표현해야 해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