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은 처음이니까
<체서피크 쇼어>가 시즌 5로 돌아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중 가장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해당 시리즈는 시즌 4까지 오브라이언 가족의 다사다난한 일상에 대해 다루었는데, 이번 시즌 5에서도 역시 더욱더 풍성해진 오브라이언 가족의 ‘인생 적응기’를 담았다.
<체서피크 쇼어>는 삶에 대해 말한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처럼, 누구나 살아가는 것은 처음이기에 사람들은 늘상 새로운 상황을 직면한다. 때로는 그것을 정면돌파하고, 때로는 그것에 적응하고 교훈을 얻기도 한다. 특히 <체서피크 쇼어>는 가족 간의 관계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룬다. 오브라이언 가족은 부모님의 불화로 인해 어머니가 17년 동안 다른 곳에 가서 살면서 5남매가 홀로 자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성인이 된 5남매는 여전히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를 어려워하고, 가족 외의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늘 고민스러운 상황을 마주한다.
이러한 내용이 시즌 4까지 주를 이루었다면, 시즌 5에서는 보다 안정된 오브라이언 5남매의 이야기를 다뤘다. 또한 이번 시리즈에서는 새로운 인물들도 많이 등장한다. 이처럼 <체서피크 쇼어>라는 시리즈가 인물 위주로 내용을 전개하기 때문에, 본 평론에서도 해당 시리즈를 등장인물별로 나누어 쓰려 한다. 각각의 인물들이 겪는 사건이 인생의 어떤 교훈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관객들도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을 위주로 썼다.
시즌 4까지 애비는 옛 연인 ‘트레이스’와 관계를 이어왔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삐걱거림이 많았다. 둘이 나눈 예전의 사랑, 그리고 추억이 많다 하더라도,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다르면 관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법이다. 마치 애비는 체서피크 쇼어에 정착해 아버지 ‘믹’의 건설 사업을 돕고, 트레이스는 노래를 하러 전국을 돌아다니듯이 말이다. 두 사람은 성향도 다르다. 애비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반면, 트레이스는 한 군데에 묶이기 싫어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며 타고난 예술가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인상 깊다. 트레이스는 애비에게, “과거의 유령을 쫓고 있었나봐”라고 말한다. 이것은 두 사람이 과거에 나눈 추억을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추억은 때론 미련이 될 수 있다. 즉 때로는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야 한다. 연인이었더라도 현재 같이 있고 싶고 함께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은 것이 맞는지, 아니면 과거의 추억 때문에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애비와 트레이스도 새로운 결정을 내린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추구하기로 말이다.
여기서 전 시즌들의 팬들은 트레이스의 잠정적 하차를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애비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둘이나 찾아온다. 그녀에게 늘 친절한 학교 선생님 ‘제이’와, 함께 사업을 하게 된 파트너 ‘에번 킨케이드’가 그들이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잘 맞는 사람과 사랑해야 한다’는 문구가 떠오른다. ‘어떤 사람이 자신과 더 맞는 사람일지’ 충분히 고민한 후, 같이 있으면 편안한 사람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직 애비의 사랑은 열린 결말이지만, 제이와 에번은 서로 다른 이상형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면 애비는 제이와 훨씬 더 행복해 보인다. 제이는 늘 그녀에게 친절하고 다정하며, 애비를 배려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의 뉘앙스는 두 사람의 관계의 이면도 살짝 보여준다. 과연 늘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도 자신과 있을 때 행복할까? 상대에게 맞춰주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반면 에번은 표면적으로 애비와 완전히 상극이다. 사업 스타일, 사업 속도, 행동력 등이 완전히 다르다. 에번은 극중 억만장자로, 몇 분 단위로 수개국의 몇백 개의 프로젝트를 결정하는, 아주 빠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에번이 뉴펀들랜드에서 등산을 하면서 애비와 사업적 통화를 하는 에피소드는 특히 재미있다. 민폐인지, 아니면 바쁜 와중에 능력이 좋아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신출귀몰한 인물이다. 이처럼 애비와 에번은 너무나 다르지만, 티키타카가 잘 된다. 유머 코드가 잘 맞는다는 뜻이다. 서로 선을 지키면서, 농담을 주고받는 둘의 대응력은 서로 비교 불가이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커리어 측면에 있어서 능력이 매우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직 애비가 누구와 맺어질지, 또는 둘 다 이어지지 않을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결혼생활에 실패한 적이 있는 애비가 새로운 사랑을 찾으며, 그녀와 더 잘 맞는 사람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관객들의 궁금증을 모은다. 무엇보다 어떤 결말로 마무리되던지, 애비가 워커홀릭이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에 집중하기 시작했음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녀의 에피소드에 응원이 더해지는 이유이다.
한편 브리도 애비처럼 새로운 두 명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첫째는 오빠 ‘케빈’의 옛 고등학교 동창인 ‘루크,’ 둘째는 브리의 옛 고등학교 앙숙인 ‘제롬’이다. 앞선 시즌에서 브리는 사이먼과 헤어지고, 이번 시즌 5에서는 새로운 사람들과 알쏭달쏭한 관계를 맺는다. 그녀도 역시 둘 중 어떤 사람과 이어지게 될지 결말이 나오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브리는 애비의 에피소드와 시사하는 바가 다르다. 브리의 위와 같은 관계들은 ‘편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먼저 루크는 예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복역을 한 바 있고, 이것 때문에 오브라이언 가족과도 반갑게 조우하지 않는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거나 사랑을 찾는 것 등의 일이 불가하다 생각하고 마음을 닫지만, 케빈, 믹, 그리고 브리는 그를 편견 없이 대한다. 믹은 이전 트레이스가 운영하던 마을 바 ‘브릿지’에서 루크가 일하도록, 그의 공사 능력만 보고 그에게 잡 오퍼를 준다. 그리고 브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 마음의 문을 연다. 극중 루크가 누군가를 돕다가 불미스럽게 과거가 꼬였다는 설정이 기반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이들의 에피소드에서는 솔직함이 메시지로 등장한다. 브리에게 꾸밈없이 과거를 털어놓은 루크, 이러한 설정을 기반으로 브리는 루크와 관계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제롬과 브리의 에피소드는, 예전 관계가 안 좋았다 할지라도 앞으로의 관계는 좋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오해가 오히려 좋은 관계의 발전을 막을 수 있음이 보여진다. 두 사람은 이전 고등학교 앙숙이었지만,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일하며 다시 만나게 되고, 고등학교 시절 라이벌이 모두 어렸을 때의 질투와 오해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글쓰기 능력이 부러워서 괜히 서로 멀리했던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성숙해진 후 만나니, 두 사람은 다시 좋은 친구로 관계를 쌓는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전의 관계가 어떠했든 때로는 그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고, 재회한 후에 새로운 관계를 쌓을 수도 있음이 보여진다.
오브라이언 가문의 둘째, 케빈은 세라와 행복한 신혼 생활을 보낸다. 이들은 새로 결혼한 부부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보여준다. 먼저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두 사람은 자녀들을 갖고 싶어 하지만, 세라의 건강적 이슈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결혼은 그러한 문제들을 두 사람이 함께 헤쳐나가는 과정임이 케빈과 세라의 에피소드에서 보여진다. 남편에게 미안해하는 세라에게, 케빈은 괜찮다고 다독인다. 이러한 이해와 위로는 결혼 생활이 원만히 지속되는 데 윤활유가 된다. 또한 세라가 직장에서 소방위라는 승진 자리를 제안받으며, 일과 육아 병행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도 나온다. 자리를 받아들이면 현장 근무가 어렵지만 육아 병행이 가능하고, 현장 근무를 계속 하면 자녀를 늦게 가져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두 사람은 가치관의 차이를 겪지만, 결국 둘은 함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리며 어떤 상황이 되었든 서로의 선택을 존중하겠다고 하며 마무리된다. 이렇게 각자의 선택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 주는 배려심으로 케빈과 세라의 상황들은 더 좋은 쪽으로 귀결되고, 임신도 일도 윈윈하는 부부가 된다.
케빈과 세라와 마찬가지로, 제스도 시즌 5에서 드디어 데이비드와 결혼한다. 특히 그들은 욕심이 큰 데이비드의 부모님으로 인해 결혼 허락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속담처럼, 결국 자녀들의 결혼에서는 그 당사자인 본인들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데이비드와 제스도 더이상 어른들의 눈치를 보면서 요리사와 여관 주인으로서의 꿈을 접지 않고, 경제적 차이 때문에 주눅들지 않으며, 서로가 함께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나간다. 그래서 두 사람을 보면 마치 <데미안> 같다. 주변의 환경이 그들을 응원하지 않을지라도, 또는 데이비드의 부모님이 데이비드에게 그러했듯 그들에게 과한 기대치가 있는데 그것과 다른 길을 가게 될지라도, 두 사람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 일종의 도전이기도 하다. 데이비드는 부모님의 기대처럼 멋진 기업의 경영진은 아니지만 체서피크 쇼어의 ‘이글 포인트 여관’에서 훌륭한 요리사로 산다. 그리고 제스는 늘 언니들의 그늘에 가려 주눅 들었다면, 데이비드라는 실력 좋은 셰프와 함께 체서피크 쇼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관을 운영한다.
이외에도 코너는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 새로운 인생의 국면을 맞이한다. 도전에는 리스크가 따르지만, 그보다 더 큰 성과와 보람을 낼 수도 있는 법이다. 또한 믹과 메건은 오래 떨어졌던 시간에 대해 서로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고, 그 위에 관계를 튼실히 쌓아가기 위해 솔직함을 배우고 있다.
이처럼 <체서피크 쇼어>는 누구나 인생은 처음이기에,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 대해 오브라이언 가족의 각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화려한 액션이나 sf 등은 없더라도, 오히려 관객들에게 공감할 지점을 많이 주며, 응원을 주기도 한다. 또 관객들은 해당 시리즈를 보면서 자신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앞으로의 에피소드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