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한 평론이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완다 비전>은 구성 자체가 굉장히 독특하다. 초반부에는 시트콤 형식을 차용하고, 중반부에는 현실 세계가, 그리고 후반부에는 ‘웨스트뷰’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처럼 구성은 매번 달라지지만, 해당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완다의 외로움, 완다에게 비전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그리고 그녀가 왜 ‘스칼렛 위치’인지, 이 세 가지 포인트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처음 1~2화는 흑백 시트콤으로 전개된다. 실제로 <완다 비전>의 관객들이 시트콤 방송을 보는 것처럼, 편집자의 개입도 없다. 화려한 액션이나 빠른 전개를 기대했다면 시리즈의 초반부는 예상과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전체적인 콘셉트의 일부이며, 코믹하기 때문에 편안하게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4화 정도에 접어들면 웨스트뷰의 비밀이 밝혀진다. 즉 전반적으로 웨스트뷰는 완다가 만든 가상 세계이다. 실제 세계를 기반으로 하지만, 완다가 그안의 인물들을 바꾸어서 만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완다가 왜 이렇게 했는지, 이다. <완다비전>은 어벤져스 시리즈 이후의 시점을 시간적 배경으로 한다. 즉 타노스의 건틀렛 플립으로 인해 5년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사라졌다 돌아왔던 사건, ‘블립’ 이후를 기반으로 한다. 이때 비전은 희생됐기 때문에 완다는 온전히 혼자 남았다. 그녀의 부모님은 소코비아라는 극중 가상 도시에서 이미 오래전에 떠났고, 그녀의 형제 ‘피에트로’는 <어벤져스 2: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울트론에게 당했다. 이후 완다 곁에는 비전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라지고 난 후, 완다는 정신적 안정성을 잃는데, <완다 비전>은 이처럼 시트콤이라는 코믹한 형식에서 시작해 아이러니하게도 완다의 외로움에 대해 세밀하게 다룬다. 결국 모든 에피소드가 그녀가 겪었던 외로움에 대해 관객들이 공감하게 하기 위함이다.
특히 그간 비전은 완다에게 단순히 동료 그 이상의 의미였다. 물론 연인이었고, 동시에 완다에게는 삶의 지지대였다. 울트론과의 전투 이후 그녀가 믿을 사람 없이 혼자 남았을 때, 비전만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했으며 위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힘들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큰 힘이 된다는 말이 있지 않나. 비전은 완다에게 그처럼 큰 의미였다. 이러한 인물관계는 비전이 사실은 기계라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는 공감 능력이나 감정이 프로그래밍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명확하게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사실을 이해할 수 있으며, 과장 없는 위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완다에게는 사람의 위로보다 비전의 존재가 더 큰 의미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시리즈에는 큰 반전이 있다. 에피소드에서 그냥 지나쳤던 평범한 인물과 관련된 반전인데, 이는 관객들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이 인물은 완다가 스칼렛 위치로 거듭나는 과정과 연관되어 있다. 마블 세계관에서 왜 그녀의 별명이 완다가 아니라 스칼렛 위치인지 궁금했다면, <완다 비전>에서 명확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결말에서 완다의 선택은 관객들에게 많은 여운을 준다. 그녀가 가상 세계를 창조해 그 안의 사람들의 마인드를 컨트롤하며 고통을 주긴 했지만, 결국 그녀가 최종화에서 내린 선택은 그녀가 원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웨스트뷰에서 완다가 비전, 또 비전과 피에트로를 꼭 닮은 아들들을 낳아 기르는 에피소드는, 그러한 일들이 비록 염력에서 비롯된 허구일지라도 완다가 어떤 것들을 원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시리즈에서는 완다가 웨스트뷰의 악역처럼 나오긴 하지만, 초능력 때문에 가족을 이룰 수 없었던 그녀에게 관객들은 안타까움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이처럼 <완다 비전>은 전반적인 콘셉트의 일관성은 낮을지라도 ‘완다 막시모프’라는 인물의 과거, 그리고 그녀의 감정에 대해 매우 세밀하게 접근한다. 뿐만 아니라 이후 마블 세계관에서 등장할 ‘스칼렛 위치’로서의 완다도 일부 스포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완다 비전>은 완다와 스칼렛 위치에 대해 이해하고픈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시리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