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왜 가는 걸까?
나는 왜 짐을 싸고 푸는가?
아무래도 직업이 교사다 보니, 나에게는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기간의 연 2회 방학이 있다.
물론, 중간중간 학교에도 나가고, 집에서 신학기 준비 및 원격으로 업무를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적인 수업이 없다는 것은 일종의 평온함을 안겨준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저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냥 저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너무 나쁜 눈으로 보지는 말아주세요 ^^)
코로나 전에는 여름 혹은 겨울방학에 해외여행을 가곤 했는데(가까운 동남아로), 2년 정도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니 슬슬 몸이 근지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제주도를 가기로 하였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가기 전에 나는 링위에 올라가는 선수 같다.
머릿속으로 해치워야 할 음식들과 얼릴 음식 등을 정리하고 어떤 짐을 싸야 할지 생각한다.
그리고 캐리어를 꺼내어 시급하지 않은 짐부터 슬슬 던져놓는다.
여행 하루 전에는 매우 급박해진다. 혹시나 놓친 짐이 없는지 메모장에 작성을 해놓고,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하며 머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여행 출발 전까지 사용할 로션, 칫솔 등은 제외하고 대부분의 것을 싸놓는다.
여행 당일 나의 모든 에너지는 짐과 그동안 비우게 될 집에 향해있다.
가득 찬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가동한다.
끼니를 어떻게든 때우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정리하고 남은 국은 냉장고에, 몇몇 음식은 냉동실로 이동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을 종용하고 짐을 챙겨 차에 탄다.
이제는 시간싸움. 공항에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한다. 괜찮아, 아직 여유가 있어.라고 자신을 다독이지만, 나도 모르게 엑셀을 누르는 나의 발.
공항에 겨우 도착했다. 2시 20분 비행기인데, 1시 30분 도착.(헐!) 사람은 매우 많았고, 이러다 못 타는 것이 아닌가 잠시 의심을 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수속을 밟고 탑승구에 제시간에 도착하였다.
하앜.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야 긴장이 풀리며 드디어 여행이구나 생각을 하게 된다.
짧은 비행 후 우리는 제주도에 안전하게 도착하였다.
호텔 도착 후 짐을 정리하며 4일 뒤 다시 짐을 싸야 한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갑자기 나는 내가 이런 짓(?)을 왜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여행을 왜 오는 것일까?
여행기간(4일)을 빼면, 여행 전과 여행 후 나는 짐과 싸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이 짓(?)을 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은 몇 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
2년 전인가,, 코로나가 중국에서 터졌다는 소식이 스멀스멀 들릴 때였다.
그때 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큰 아이는 중1이 되면서 부쩍 나에게 예의 없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작은 아이는 손이 많이 가는 데다가 온갖 집안일과 아이들을 혼자 케어하는 주말부부로서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다.
신랑에게 '나 혼자 여행을 갈 거야'라는 통보를 하고 나름의 여행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신랑에게 독박 육아를 시킬 생각이었으나, 그곳에서는 아이들의 학원이나 여러 가지가 걸려 결국 주변 친정 언니와 친정아버지께 간단한 것을 부탁드리고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러니, 이 여행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나 혼자 편하자고 내 주변인(언니와 아빠)에게 나의 책임을 전가한 꼴이니....
몇 번이나 여행을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한 번만 이기적이 되어보자며 그냥 추진하였다.
내 짐 싸기, 아이들 짐 싸기, 학원 스케줄 정리 및 전달, 집안 정리하기, 아이들 이모네 데려다주고 아빠와 언니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몇 번이나 하며 겨우 출발하였다.
인천공항으로 정신없이 운전을 하며 문득 현타가 왔다. '이거 여행 맞아? 나 왜 가는 거야??'
그렇게 나는 가까운 필리핀으로 떠났다.
친구를 만나 1박 2일 동안 낮 맥주, 호텔 마사지(아이와 함께 가면 하기 힘든), 뷔페를 즐기고, 다른 친구들이 있는 섬으로 떠났다.
취할 때까지 술도 마시다 낮잠도 자고, 밤에 수영장에서 히히덕 거리며 튜브도 타보고, 그야말로 삐뚤어진(?) 생활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혼자 바닷가를 산책할 때였다.
혼자라는 해방감과 동남아의 해변이라는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약간의 떨림.
지나가다 바닷가 카페에 앉았다.
아침이었지만 뭐 어때. 맥주를 시켰고 아침이어서 한산한 바닷가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냥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나는 여행을 왜 하는 걸까?
그때도 나에게 물었지만 내 마음속 해답은 찾지 못했다.
얼마 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다가 오랫시간 내가 풀지 못한 답을 발견하였다.
여행은 일상의 부재...
이 단어를 보고 내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작가는 작가다. 나의 흐리멍덩한 머리를 명쾌하게 정리해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김영하 작가님!)
여행지에서 나는 무슨 음식을 해먹이나라는 고민보다, 무엇을 먹으러 나갈까 고민한다.
빨래는 언제쯤 돌리지?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다.
나의 일정이나 아이들의 학원 일정은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에서의 나는, 일상이 아닌 순간의 경험에 집중한다.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해방으로 다가온다.
실은, 이 글을 쓰는 지금 개학을 하여 매우 정신이 없는 상태이다.
그래도 잠깐의 쉬는 시간에는 앞으로 있을 일상의 부재를 꿈꾸며, 이를 조심스레 계획해본다.
잠깐의 생각이지만, 그런 상상이 나의 오늘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나는..! 짐을 싸고 푸는 일, 그 귀찮을 여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