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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Mar 28. 2017

대학로 즐기기

[연극]텐:열흘간의비밀, 놈놈놈(사랑했던놈,사랑하는놈,상관없는놈)

우주의 기운을 받아 당첨운이 뻗치고 있는 친구 연주의 덕을 받아 대학로 공연 2편을 보고 왔다.

대학로까지 기왕 나간김에 몰아서 2편의 공연을 볼 수 있는건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에 다음날이 이사임에도 불구하고,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좋은 기회에 늘 함께하게 해주어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 뿐이다.


티켓을 먼저 받고 먹어보지 않고는 못베긴다는 스타벅스의 슈크림 라떼를 마시며 3시 공연까지 대기 했다.



이 연극 뿐만 아니라 캐스팅 배우 보드판을 볼때마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실제 연극을 할때 발산되는 배우의 이미지와는 참 다르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무대 장치는 여느 소극장에서 보는것과 다르지 않게 다목적 가구 활용을 이용한 
공간 분리 시점을 이용하고 있었으나, 시작전 바닥에 새겨진 극 제목 TEN 글씨의 조명이 
특별히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에게 차인 혜영은 사랑을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이 많아지고 일에 매달리게 되는데 
영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겨 떠나고자 하니, 혜영의 아버지가 니 나이 서른둘이며 2년동안 나갔다가 들어오면 노처녀로 늙어죽을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반대한다.

연이은 선을 계속 보면서 남자들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 하며 퇴짜를 놓는데, 혜영의 아버지는 네가 차인쪽이 되면 영국 유학을 허락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고 뒤로는 프로그램 개편을 이유로 준호에게 자신의 딸을 꼬시면 프로그램을 맡기겠다는 거래를 한다.

그 뒤로는 ?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전개가 이어진다.

극 시작전 대부분의 연극은 관객대상으로 이벤트나 주의사항 같은걸 당부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 연극은 사전 코멘트에서 본극으로 이어지는 방식이 특이하고, 황당하고, 실감나게 넘어간다.
(왜 인지는 스포가 될 것 같으니 비밀로)

멀티맨 배우분은 여러가지 역활을 한다. 
남자 주인공 준호의 친구, 국장, 혜영의 아버지, 혜영의 친구 등
그 중 금발 가발을 양손으로 쓸어 넘기며 새침을 떠는 혜영의 친구 로라 역활이 너무나 너무나 X 10000000 웃겼고, 엉덩이 골이 보이는 PINK 팬츠를 입고 요가하는 장면은 따로 녹화해두었다가 우울할때마다 꺼내보고 싶을 정도로 펑펑 웃었다.


다음 연극 대기 시간까지는 엉클스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매운단계 최고조 3단계로 튀김 토핑은 없이 먹었는데 핵불닭볶음면 처럼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게 만드는 매운맛은 아니고 달짝지근 하게 매워 국물에 자꾸 손이가게 만드나 계속 먹다 보면 셀프서비스 무와 단무지를 자꾸 먹게하는 맛이었다.

결론은 맛있었다.


추락하지 않고 하늘로 무한히 걸어갈것 같은 조형물이 인상적이었다.

대학로는 가끔 오지만, 낙산공원 표지판 아래쪽으로만 돌아다녔던지라 소화도 시킬겸 공원 산책도 했다.
공원 산책로까지 오르는 굽이 굽이 주택가와 골목길이 어찌나 운치있던지 , 
그래 ! 난 골목길을 사랑했었지싶은 막연한 확신을 걸음 걸음마다 심어 주었다.

숨겨진 보석같은 예쁜 소규모 가게들도 많았다.

스스로에게 조금 아쉬워지는것이자 반대로 연연하지 말라고 토닥여 주고 싶은것이 
점점 사진을 안찍게 된다는 점이었다.



사진이 찍히는건 계속 싫었고, 내가 찍는 사진은 발자취는 담아올 정도로는 찍었는데 요샌 카메라를 켜는 그 시간도 번거롭고 귀찮다.
(하여 이 포스팅의 모든 사진은 친구가 찍어둔 사진임)

대신에 주변을 보는 시야와 감흥이 깊어졌다.
' 오호 이 건물은 언제부터 있었던거지 ? '
'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었네 '
' 이 가게에서 공방도 하네 ' 

카메라 시야 밖에서 더 많이 두리번 거린다 하여 길찾기 뇌기능이 깨어난건 아니다.
아마 난 평생 길을 잘 못찾는 여자로 남을 것 같다.
다행인건 늘상 길을 잃다 보니 낯선곳에선 구경을 핑계삼아 헤매이는걸 즐기게 된다.


오후7시에 시작되는 두번째 연극 놈놈놈으로 옮겨왔다.


 또 오해영 드라마에서 해영에게 친절했던 직장동료로 익숙한 권해성님이 출연하다하여 반가웠다.


이 연극은 무대 소품 가구들이 특히나 예뻤다.

극의 주 배경의 철용의 집이었고, 심플하면서도 정갈한 블루톤의 인테리어가 똑 떼어 
내방에 옮겨 놓고 싶었다.

입장 후 공연이 시작되기전까지의 대기는 관객들은 빈 무대를 관찰하는 (?) 시간이 되는 것 같다.

인테리어 관계자도 아니고, 무대 연출 관심이 있는것도 아니나 주절 주절 늘어놓게 되는 무대가 어땠느니 하는 썰에 대한 변명이었다.

한 여자를 둘러싼 세명의 친구가 각자의 위치와 관점으로 사랑을 바라보고 사랑과 우정사이에 이해 관계를 피력하는 언쟁방식이 흥미진진했다.

세남자가 오매불망 얘기하는 그녀가 등장하지 않아도, 
대체 어떤 난년이길래 10년간 연애한 사람 따로, 새로 사랑을 시작한 사람 따로, 10년간 짝사랑하게 만든사람 따로 그 중심에 서있을 수 있는지 궁금함을 갖게 하면서 관객만의 그 여자 은지를 그릴 수 있는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것 같았다.

철용이 처음 입고 나온 노란 가디건은 승진에게 거쳤다가 병호에게로 가는데 나는 그 노란가디건이 
등장하지 않은 여자와 그 여자에게 실린 미련을 대변하는 극 중 매개체 장치로 생각이 되었다.

다혈질적인 병호에게 은지는 나를 버리고 내친구와 사귀는 나쁜년이고 
자유연애주의 승진에게 은지는 과거가 있으나 내가 다 이해하고 감싸주어야 할 사랑이고
10년의 순애보를 간직한 철용에게는 함께한 하룻밤의 기억조차 소중해지는 여자였다.

병호와 승진의 줄다리기 속에  끙끙 속앓이를 했던 철용의 고백은 그리고 그 긴 독백은 
절실하게 매달려본 짝사랑의 기억이 없는 사람도 그 멍울이 느껴질만큼 절절했다.

감동있는 연기있고, 의미있는 시간을 느끼게 해 줄 대사지점들이 많았다.

볼때마다 느끼지만, 배우들은 그 많은 대사를, 동선을 어떻게 다 외우는걸까싶다.

자고로 외우는것은 문장 한줄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내가 볼적엔 
인간승리에 가까운 기행같아 보였다.

한번에 보이고 표면에 다 이해되는 엔터의 요소가 큰 연극도 재밌지만, 
두어번 곱씹어야 와닿을 수 있는 심각하고 진중한 연극도 볼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없을것 같은게 재밌어질것 같은 시점의 변화는 이번 연극 놈놈놈을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예술학적 공연을 보는 사람들에겐 이 연극도 엔터 요소가 강할 뿐이겠지만, 
반대의 노선에서 연극좀 보겠습니다 하고 출발하는 사람들에겐 이 연극이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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