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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Oct 31. 2016

금요일밤의 여정

이태원 -> 동대문 종합시장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의 부류가 있다.


지키는 것은 나중 문제고 계획이나, 해야 할 일 같은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에 능한 사람과,

실천력이 강한 사람.


나는 전자 쪽에 가깝다면 친구는 후자 쪽에 가까워, 

내가 늘어놓은 리스트들에 체크 표시로 점을 찍어 주는 사람이었다.


사람 북적대는 게 싫다며 회사 구내식당도 잘 내려가지 않지만,

홍대나 이태원 같이 자유와 젊음이 들끓는 거리라면 한 번쯤은 인파에 휩쓸려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가보고 싶다고 했더니 가는 경로와 둘러볼 곳을 챙겨 알려주었다.


금요일 퇴근 후 이태원역 2번 출구에서 함께 할로윈 분위기를 즐겨 보기로 했다.



우선은 근처 이슬람 사원에 다녀와보기로 했다.


할랄 음식점들이 즐비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알라 후 아크바르(위대한 알라)의 성전 글씨가 


녹빛 조명으로 빛나고 있었다.


성전 안은 한산 했고, 내부 구경을 할 수 없는 시간이라 사원의 외벽, 건너편의 야경 정도를 둘러볼 수 있었다.


산호초 같은 조명이 밤바다 속에 잠긴, 왕궁을 떠올리게 했다.


이슬람에 있는 신전도 저런 지붕모양을 하고 있을까 한국에 있는 무슬림 신자들은 얼마큼 닮아있다고 생각할까, 하는 마음속 질문들만 많아졌다.



처음 발을 디뎌본, 이태원 거리는


이곳은 서울이 맞지만, 음식점들의 간판과 무수히 스쳐 지나가는 외국인들 덕에 


내가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이태원 안에서 만큼은 나보다 외국인들이 더 익숙할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더 낯선 쪽이 이방인이 맞다면 오늘은 내가 이방인이 맞을 것이다.



회사 안에서 숱하게 듣던 이태원 라인 프렌즈 샵에도 들렀다.



할로윈을 맞이한 대왕 곰돌이 브라운의 코스튬이 매장 입구에서 반겨주었다.


일본 캐릭터 미피도 그렇고, 이 라인 캐릭터들도 그렇고 


무표정함이 오히려 귀여움을 배가 시켜 주고, 


입이 없는 모양에서 ' 네 얘기를 들어줄게 ' 와 같은 수용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하던데,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은 사람이건, 캐릭터건 답답하게 느껴졌다. 



브라운, 코니, 샐리 들이 사는 라인프렌즈 샵 안에는 이 친구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 처럼 방들이 꾸며져 있었다.


귀엽고 깜찍한 상품들은 많지만, 비싼 가격선들을 뛰어넘어 사고 싶은 물품도 없었고, 필요한 것도 없었다.


흠 잡을데 없이 잘 꾸며진 팝업 스토어안의 캐릭터들을 보면 그 곳에서만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유흥 주점들이 몰려 있는 거리는 사람이 정말 정말 많았다.


피칠갑의 분장을 하고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었고, 


눈이 휘동그레질 정도로 시선을 잡아두는 사람을 찍어 볼 만한 짬도 나지 않을 만큼 


인파에 밀리고 밀려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내가 아마 꿈속에서 음소거 처리 된 이 광경을 보았다면 악몽을 꾸었다고 할 것이다.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게 유희이자 즐거움으로 허락되는 날이었음에도 


즐겨지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성스럽게 잔인한 분장을 하고, 집에 어떻게 돌아갈지 걱정되는 복장을 하고 이곳에 몰려 있는 이유가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그리고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기분에 취한다는게 , 이제는 이해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일이 되었다는게 서글퍼졌다.


할로윈의 이태원 거리에 온 뒤로는 두가지 유형으로 나뉘는 사람의 분류가 바뀌게 된다.


아드레날린이 뿜뿜 솟아 올라, 좀비가 된것 마냥 이글이글 거리며 그저 밤거리를 걷는 것에도 흥이 오를 수 있는 사람과,그런 흥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



이번엔 후자의 사람으로 유형군을 옮겨타 , 인파를 조금 피해보기 위해 경리단길로 넘어가는 골목 사이를 걸어갔다.



가로등의 적황색 조명이 구석 구석 퍼져 있는 좁고 비탈진 길을 걸으며 

그제서야 대화를 하며 걸어다닐 수 있었다.


낮게 깔리는 적막을 타고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뒷골목의 밤 거리가 훨씬 좋았다.



눈앞의 크리스마스 트리같이 느껴지는 조명의 남산을 보면서, 


남산에 함께 갔었던 사람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내가 지나간 남자친구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도 또야 ? 라고 생각되겠지만 그저 들어만 달라고.


하고 싶은 말 외에 구태연한 설명 덧붙임 없이 이미 곁에서 많은걸 보아와주고, 들어와준 그 친구에게는 

이름만 던져두고 과거 이야기를 시작해도 그가 누구였는지 알아봐주기 때문이다.


친구는 항상 내편을 들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내 입장을 위로해주는 말들 속에서 그 반대편의 섰을 사람의 마음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누군가에겐 따뜻할' 옮겨간 마음과 인연의 무상함, 불가항력 같은 관점에서 

그만 아파 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찜질방에서 한 숨 자고, 다음날 동대문 종합시장에서 선물용으로 만들 악세사리 부재료를 사왔다.



주말의 나머지 시간들은, 


전기 방석을 켜두고 이불을 두르고 노래를 들었다가 


유투브 동영상들을 보았다가 하면서 악세사리들을 조립했다.



사실, 이런 시간들이 갈수록 더 평화스럽고 안정적이게 느껴지고 있어, 


한편의 걱정이 종종 들기도 하지만,


바깥 외출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돌아다니는 활동도 좋아하기 때문에 


'나는 집에 있는 것이 좋아 ! ' 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한면의 모습으로 자신을 정의하려다 보면 많은 가능성을 잃어버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 나는 그럴수도 있는 사람이에요 " 


모 드라마 (W)의 대사처럼,


지금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태원도, 할로윈도, 방구석 소일거리도, 

다른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시간도 올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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