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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Oct 23. 2016

보람찬 어슬렁

2016.10.22 전주 한옥마을


긍정적인 표현은 평화와 안정, 

반대편에 선 표현은 무료와 의욕상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고쳐 쓰면 의욕 저하인

같은 상태를 설명하는 양면의 마음가짐이 나는 요즘 부쩍 낯설다.


본디 그 하나의 생각만 빼고 다른 것들을 생각해보자 라고 결심한 순간부터

빠져나올 문을 어디에 그려 두었는지 잊어버렸던 것이다.


기운차게는 아니지만 노만 젓고 있다면 배 아래의 상황은 관망하는 편이 내가 사람을 지켜보는 방식이지만,

같은 방식의 대우를 내 주변 사람들에게 당연하다는 듯이 기대하진 않는다.


답을 주어야 했고, 

걱정시킬 마음은 애초에 없었기에 들키지 말아야 했지만, 이미 여지를 던져 준 것이라면 

길지 않은 시간 안으로 해결되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엄마에겐 잠시 모습을 감춰두는 게 좋을 것 같았고

회사 사람들과의 시시 콜콜한 대화엔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다시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이 늘었다.


주량이 아니라 주회 정도.


쌀 한톨만큼도 심각함을 담고 있지 않은 가벼운 동영상들을 찾아보면서 웃고 싶을 때 낄낄 거리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했더니, 

친구 역시도 혼술의 위안에 기대어 있는 중이었다.


본격적으로 친해진 친구가 된 건 15살부터니까 올해로 16년.

알고 지낸 건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오래, 심지어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까지 같은 곳을 나온 친구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른이 익어가는 열병에 함께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항심 많은 10대들의 사춘기도 

개인 나름의 시기가 각자 온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대게 그 무렵대를 지나는 병을 앓고 간다.


어쩌다 보니 서른이었고, 

서른하고 더하기 일은 삼십 대를 준비하는 맛보기 시간 같았다면 

뒷자리가 통통 해지는 숫자 2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저무는 달로 들어서면서

많은 것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다고, 그게 편하다고 했지만 사실은

혼자라는 기분이, 당연하게 길들여질까 제일 무서웠었다.

너 한번, 나한 번 이끌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었다.


황금 가을 날씨 아래 바지런히 다녀 보자고 하나 둘 함께 계획을 

세워보는 중에 10월 초 계획했던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다.



버스 왕복비만 포함된 자유 여행 상품을 구매하여, 

나는 범계역, 친구는 수원역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3시간 30여분을 달려 한옥 마을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것이 건물들의 낮은 키였다.

수채화 같이 잔잔하게 뿌려 있는 구름과, 도화지가 된 하늘이 땅까지 닿는 여백으로 한 뼘 늘려 놓은 것 같았다.

9만여 평 구역 안에 700여 채 기와집이 모여있다고 하니,

까치발 한 뼘 위로 기와가 걸린 하늘의 풍경이 탁 트인 공간처럼 느껴졌다.




어진길 초입부에 들어서자마자 고운 한복들이 걸려 있었고,

'한옥마을에 왔으면 한복을 입고 걸어주는 게 흥이 날 텐데? '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지만

굳이 한복을 입지 않아도 한복 색같이 고운 봄 같은 기분은 충분했고, 

편하게 걷고 싶은 마음이 조금 더 컸었다.



한옥마을에 '맛있는 것'들이 참 많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들어서는 초입부부터 돌아보는 내내 먹을거리들이 늘어서 있는지 몰랐다.

알았다면 조금 더 계획적(?)으로 구역별로 분산하여 먹거리 지도를 완성하지 않았을까? 


원조 수제 초코파이라고 적어둔 풍년제과의 초코파이가 진짜가 아니라 

PNB 상표가 붙은 것이 진짜다 라며, 초코파이 원조 설명에 열을 올리는 옆 가게 사장님 앞을 우리는,

먼저 나타난 원조가 초코파이집에서 산 마약 빵을 먹으며 지나갔다.



대한민국에서 음식점 원조 찾기는 항상 혼란스럽다.


'원조 000집' 이 있으면 그 옆에 '진짜 원조 000집', 그리고 그 옆엔 '정말 정말 원조 000집' 

이렇게 생겨나는 격이니까 말이다.


아무튼, 옥수수 알갱이가 다닥다닥 박힌 마약 빵도 맛은 있었다.



옹기종기 붙어 있는 한옥집들은 다른 지역의 민속마을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데,

실제 사람이 거처하는 공간을 살려 주거적 형태의 면을 강조한 쪽이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한옥마을 쪽이었다면, 전주는 

상업공간으로 활용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기와를 얹은 가게, 메뉴판이 걸린 문살, 가게 앞의 판매 상품들이 진열된 좌판들 등을 보면서,

한옥마을을 다녀온 사람들의 소감이 좋았었다, 볼 게 없다 하는 극의 평으로 갈리는 이유 또한 알 것도 같았다.





어떤 여행지를 다니든 간에 '집 떠나면 새로운 모험'이라는 게 집순이 일인분의 의견인데,

떡 주무르듯 내가 도시계획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현재의 특성으로 발전되어온 여행지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황무지 같은 곳에서도 얻을 거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마음가짐의 차이니까 말이다.




한옥마을이 관광객을 이끄는 매력 중 하나로 관광 포인트로 내세우는 것이 '먹방 투어'라고 했다.


한가게만 특수하게 파는 먹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중복된 메뉴들로 길거리 음식이 팔리고 있었지만, 그 가짓수가 다양하다.


근처 전북 임실군에서 유명한 임실치즈도 먹어볼 수 있었다.


철판에 노릇노릇 구워 꼬챙이에 끼워준 모차렐라 치즈가 쫀득하게 고소했다.


한입, 두입 맛만 보고 가자 하다 보니 꽤 많은 군것질을 섭렵하고 있었다.



한옥 마을 지도를 보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다 돌아볼 수 있을까? 

최대한 구석구석 다녀보고 싶은 욕심을 채워볼 수 있을지 점쳐 생각하기 얼마 되지 않아,

표시된 길에서 길 사이의 거리가 짧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들 사이까지 돌아보아도 시간은 충분할 것 같아 여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어진(임금의 초상화)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진 경기전 돌담길을 지나면서 

대여한 한복을 입고 이리저리 사진 찍는 것에 여념이 없는 소녀들의 뒷모습들이 참 고왔다.


전통 고유의 한복이라기보다는 개량 형태의 일본 기모노 문양 색채와, 서양 드레스 같은 느낌이 중첩된

행사용 복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화려하고 예쁜 복장임에는 틀림없었지만,

한옥마을 안 복식의 태생이 애매하게 느껴졌다.




수공예품과 액세서리, 한지 공예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부스들도 많았고,

취향껏 골라보아도 한눈에 다 훑어보고 지나갈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판매품들도 있었지만

특수 프린팅 전사 방식으로 한지에 사진과 글귀를 넣어 판매하는 가게가 기억에 남았다.


잉크 한 방울 담기면 잘잘히 퍼지게 하는 종이가 한지라고 생각했는데, 

사진도 글도 한지의 느낌은 살리면서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 너 빨리 시집가라, 내가 결혼 선물로 여기서 사진액자 주문해줄게 " 

라고 했더니 " 아니야 네가 먼저가 내가 선물로 해줄게 " 라며, 서로 먼저 해주겠다는

짠내 나는 광경을 한컷 찍었다.


1908년 건축을 시작해 명동성당을 설계한 푸아스넬 신부에게 설계를 의뢰해 

1914년 완공된 전동성당을 보았다.


오후 4시까지 미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 두어 철문 밖에서 

도둑 촬영하는 것 마냥 사진을 찍었다.


묵직한 종소리가 울리면 

계단 아래 모여있던 하얀 비둘기들이 푸드덕 날아가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같은 건물이었다.


희끗희끗한 회벽과, 붉은 벽돌은 가장 한국적인 한옥집들 사이에서 우뚝 솟은 

서양 사람들의 콧날처럼 이색적이면서 날렵하게 멋이 났다.



전주는 모주라고 부르는 막걸리가 유명하다면서,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 거리는 승냥이들처럼

걸어 다니며 홀짝 거릴 수 있는 모주가 없을까 하던 찰나에

모주 크림으로 만든 슈크림 빵을 먹었다.


막걸리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것이 크림만 따로 사가고 싶을 만큼 신기하고 풍미가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길목의 카페로 들어가면,

한산해진 돌담길 쪽으로 멍하게 시선을 풀어두고 커피를 홀짝 거릴 수 있다.


서로 심심해하지 않을까,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부담 없는 오랜 친구 사이가 

이런 휴식시간에 특별히 귀하게 느껴졌다.



동문 예술거리 쪽으로 들어서게 되면

지역 예술가와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역밀착형 상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낡은 외관과 조형들이 의도된 추억 속 시간여행의 소품이 되고 있었다.



어린 시절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으로 오려내어 옷을 걸쳐 주었던 종이인형과,

우리 집 뚱땡이 텔레비전 위에도 놓여있었던 못난이 시스터즈 인형, 불량식품,

촌티 나는 형광색의 장난감들이 반가웠다.


옛 추억을 회상하는 기성세대가 문화의 한축으로 다시 조명되면서,

옛날 불량식품, 학용품 등을 다시 만드는 공장이 있다고는 들었던 것 같은데,

종이인형의 조우는 참 오랜만이었다.



한옥마을 대표 길 중 하나인 은행로 쪽으로 들어서게 되면,

길게 이어진 실개천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길이지만 아담하고 깔끔하게 곡선으로 이어져 있어

자꾸만 바짝 붙어 따라 걷고 싶게 만들었다.




몸은 커도 순둥순둥한 백구를 지나,



기린대로 쪽으로 올라가 자만 벽화마을을 구경하러 갔다.



벽화마을의 초입 가게부터, 

토끼를 따라 굴로 들어가는 앨리스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아기자기'의 결정 아이템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2013년 마을에 벽화가 그려지면서 '벽화마을'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 커피숍, 스몰비어집, 등등의 가게가 들어서 있었고 

좁은 골목길을 굽이 굽이 오르면서 돌아보는 담벼락 작품들이 대형 설치 미술 공간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왕조가 살았던 곳이므로 아무나 이곳에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표식인 '자만금표' 표석을 마지막으로 자만 벽화마을을 내려왔다.




가을 햇살을 이고 걷다 보면 아직은 낮에 덥다는 느낌이 들었다.


쌉싸름하고 진한 말차가루가 고슬 거리는 녹차 아이스볼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으면서 

해 있을 때 땀날 수 있는 계절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배로 맛있게 넘어갔다.


겨울날은 아마 다른 이유로 티타임이 소중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버스에 오를 차 시간에 삼십여분 정도를 남기고, 

전주 소리문화관에서 주최하는 송재영 명창의 판소리를 들었다.


춘향가 중 이몽룡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장모와 나누는 대목이라고 하는데,

눈앞에서 실제로 판소리를 들어보는 건 처음이라 

자뭇 진지하고 경건하게 경청했다.




버스가 세워져 있던 카센터 앞에 품종 모를 개가 매여 있었는데, 

어마어마하게 컸다.


190cm의 장신이 엎드려 있었다면 저 정도 크기가 될까? 싶을 정도의 덩치였다.


그 강아지를 마지막으로 짧은 전주 여행의 마침표를 찍었다.




두서너 구간 조금 막혔던 것을 빼면 주말 교통길 치고는 어렵지 않게 돌아왔던 것 같다.


한지 가게에서 가져온 캘리그래피 명함을 작게 오려 컴퓨터에 붙이고 나자

"집에 멍하지 있지 않고, 이렇게 밖에 나오니 참 뿌듯하다"라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나 또한 그러했음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함께여서 소중한 추억이 되었음을 

답해주고 싶었다.


역시나 쑥스러운 말들은 잘 표현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삼킨 말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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