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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Sep 05. 2016

엄마와 함께 대만 2박 3일②

둘째 날: 스펀->진과스->예류 공원->융캉제 거리->국립 중정기념관


둘째 날은 미리 신청해둔 '예스진지' 버스투어를 했다.


대만 주요 관광지인 예류 지질공원, 스펀, 진과스, 지우펀을 하루 안에 대중교통으로만 모두 돌아보긴 어렵기 때문에 택시 투어나 버스 투어를 많이 한다고 한다.


여유롭게 시간을 오래 가지고 느긋하게 돌아보는것도 좋겠지만

여행지로 떠나오는 것도, 바라는 이상처럼 시간을 많이 갖는 것도, 대부분 여의치가 않다.


대만 어느 곳엘 가도 들려오는 한국어가 참 반갑다가도,

비슷한 여행지를 잽싸게 돌아보려는 바쁜 불나방 떼와 닮아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함께 버스투어를 다녔던 사람들은 함께 온 사람들과 각자 열심히 즐거워했다.

나도 엄마와 그러면 되는 것이다.



스펀으로 향하는 길에 유명한 타이베이 101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코스에 넣어두지 않아 보지 못하는 건물이라 생각했는데,

지나다니는 길에 잠깐 마주치니 유난히 반가웠다.



첫 번째 정착지는 스펀이었다.


기차가 마을 한가운데를 통과하는데, 핑시시엔 기차로 인근 주요 역들과 함께 돌아보는

일정도 참 낭만적이고 즐거울 것 같았다.


스펀에서 천등 날리기 체험을 했다.



4색(빨강, 주황, 초록, 노랑)의 단면의 색들이 상징하는 의미에 맞춰서 소원을 쓰고 함께 하늘로 날려 보내면 되는데, 사랑하는 이들의 건강과, 미혼자들은 좋은 인연을, 기혼자나 연인인 사람들은 영원히 함께할 사랑을 대부분 적는다.


엄마와 나는 2개씩 소망을 적었는데

엄마는 1. 자녀 결혼 2. 가족건강이었고

나는 1.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의 행복 2. 부자 되게 해주세요 였다.



사람들의 꿈과 소망을 하늘로 올려주는 동네답게 평화롭고, 소박한 크기의 아기자기한 손 공예품들이 빛나는

예쁜 마을이었다.



다음 도착지는 진꽈스(황금박물관)이었다.


여기서 광부 도시락을 점심으로 많이 먹는다고 하는데, 조식을 잔뜩 먹고 나온 덕에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

황금박물관을 관람했다.




드넓게 푸른 산등성이가 주변을 감싸고, 바닥의 나무 레일과 운반 수레가 금을 캐던 황금시대는 저물었어도

자연의 은혜를 받는 경치가 황금으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쨍쨍 내리쬐는 햇볕에 김이 나며 쪼그라들 것 같다가도 그늘만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서서히 몸을 식힐 수 있었다.



황금 박물관 안의 금덩이도 손으로 만져보았다.


금덩이를 한 손으로 만지고 다른 한 손은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두면 재물이 들어온다고 하여, 그런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스펀에서 천등에 쓴 소원도, 금덩이를 만지며 호주머니에 넣었던 한쪽 손도

효험을 발휘해 주면 참 좋겠다.



한국 관광지들과 비교하면서 재미난 점이나 특이점을 찾는 걸 주로 엄마와 얘기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관광지라 하면,

조금 인위적으로 느껴질지라도 풀이나, 나무, 주변 경관을 다듬고 자르고 잘 치워두는 표현이 어울리게끔 만들어두지만, 대만은 자연적으로 자라는 초목에 관해선 무신경할 정도로 관대한 편이었다.



진꽈스에서 버스로 5분 거리인 지우펀에 도착하여

버스는 무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었다.



이 주변 경관이 풍수지리적으로 이루 말할 수 없게 좋기 때문에 묏자리가 많은 편이고 주차장 역시도 묏자리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만 쓱 둘러보아도 사방이 넓게 트인

산천초목에 멀리 바다까지 보이는데 나쁜 이유란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지우펀으로 올라가는 길이 좁게 연결되어 있었다.



빨간색 홍등이 반짝이는 야경이 예쁘다는 지우펀이지만, 낮은 낮대로 활기 있는 곳이었다.


다양한 먹거리와, 악세서리 용품들, 좁은 길 양편으로 언덕을 타고 올라갈수록 상점, 노점, 갖가지 가게들의 향연이었다.




엄마는 가이드가 일러준 코스까지만 갔다가 바로 돌아가기를 원했고,

나는 조금 더 올라가 홍등이 걸린 풍광을 더 보고 싶어 해서 의견 충돌이 있었다.


자유여행을 왔으면서도 가이드 안에 매여있는 엄마 때문에 볼이 잔뜩 부었었고,

엄마는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위험한 모험은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서 참고 참았던 것들이 터졌나 보다.


지우펀 안에서도 내가 따라오는지 뭘 더 보고 싶어 하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버적 버적 혼자 올라가 놓고서

조금 더 가보자고 하니까 마치 거기는 넘어가면 안 되는 곳처럼 완강하게 버티시고,

올라온 속도대로 그대로 내려가면 시간만 남아돌 것 같아서 천천히 속도를 내려 주차장에 도착하니

엄마 말이 맞지 않냐고, 이렇게만 갔다 와야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고 하니까

짜증 났던 감정들을 우다다다다 쏟아내 버렸다.


참 여행 스타일 안 맞는다고, 어쩜 그렇게 경험에 소극적이냐고

어차피 여행 온 거 원래 하지 않았던 것도 한 번쯤 먹어보고, 한 발자국 더 가보면 어디가 덧나서 그러냐고

엄마의 성향은 인정하지 못하고, 내 답답한 것만 말해버렸다.


" 엄마가 50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는데 어떻게 한 번에 달라지니..."

그때는 잘 들리지 않았던 말이 뒤늦게 글을 쓰고 있었을 때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떠올랐다.

귀에 담았다면 미안해 마지못했을 감정들을 나 편하자고 흘려버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우펀을 지나 예류 공원에 도착하였을 때 엄마는 한껏 밝아져 있었다.


일부러 그러시려고 하신 건지, 아니면 엄마가 좋아하는 코스가 나와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찜찜하게 미안함을 떠안은 채 다시 살갑게 굴어보려 노력했다.



주변 경관에게 감탄하고, 신기해하면서 어색했던 거리도 차츰 지워져 갔다.


원시시대로 흘러와 과거로 탐방하는 기분에 빠졌고,


굳이 시기를 찝어두고 싶은건, 어마어마하게 더웠기 때문에


화산폭발이 일어난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고 해두고 싶다.




바람과 파도에 의해 풍화되고 침식된 형태의 바위들이라는데,

참 신기하게도 잘 빚어놓았다.



공주 머리 바위는 목이 점점 가늘어져 온전하게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사진 찍기 인파가 가장 많았다.




예류 공원 관람까지 마치고 융캉제에 내려 오늘의 버스투어 인원들과는 해산했다.



융캉제에서 밤을 즐겨보기로 했고,

가이드에게 향이 좀 덜 들어가는 음식을 추천받아 티엔진총좌빙에서 새우 샐러드와 우육면을 시켰다.


나는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고, 엄마도 그럭저럭 드신 후 이 가게에서 줄을 서서 사간다는 천진총조병을 샀다.


기본 총좌빙에 계란, 햄, 치즈 등을 넣어 부쳐주었는데 돌돌 잘 말린 부침전을 먹는 식감이었다.


공원에서 앉아 한입씩 나눠 먹으며 사람구경을 하였다·



공원 바로 아래쪽에 있는 유명한 망고집 쓰무시에도 갔다.


가격과 양은 착했고 맛도 좋았다.


ATM기에서 도착한 대만 달러를 다 쓰고 갈 생각에 이날은 열심히 먹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출발하는 타오위엔공항에서 마지막 남은 80NT를 털어 차음료를 사 먹은 것으로 6500NT의 돈을 모두 탕진했다.



국립 중정기념당의 야경을 마지막으로 둘째 날의 일정을 마치기로 했다.


조도가 한 톤은 낮은듯한 야경 빛이 위엄 있게 기념당을 비춰주고 있었다.



이 넓은 공간을 대만 시민들이 참 자유롭게 나눠 쓰고 있었는데,


한 방송사에서 기획한 도라에몽 기획전도 인상적이었고,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각자 춤 연습을 하고, 악기 연습을 자유롭게 하는 모습도 기특해보였다.


넓은 공간 안에서 약속된 것처럼 각개 구역을 나누어 쓰고 소음이 조금 겹치는 정도야 별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는 듯이 자기 연습에 매진하였다.



참 평화로운 평일 저녁의 일상이었다.


저들처럼 엄마는 악기를, 나는 춤을,

서로 매진하고 싶은 분야가 달라도 같은 공간 안에서도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함께 즐기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나는 춤 연습을 하는데 엄마의 악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고 밖에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러워졌다.


여행은 항상 즐겁고, 무조건 떠나야 마땅할 정도의 동기부여도 매번 되지는 않는다.


혼자의 여행은 외로움의 사투이고, 둘 이상의 여행은 조화와의 전쟁이지만.

종종 나만 애쓰고 있다는 착각과, 과신에 빠지게 된다.


내가 길을 잃고 헤멜 때 먼저 방향을 일러주었던 엄마도 엄마 나름의 바짝 곤두선 신경으로 나와의 여행에 애를 쓰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가장 가깝고, 사랑으로 감싸줄 가족 엄마와의 짧은 여행은 새로운 엄마와 내 모습의 발견이었다.


매일 부닥거리던 익숙한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민낯들이 서로를 실망케 했고, 속상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다음에는 함께하길 포기하는 상대가 아닌

다음에는 내가 더 잘해볼게, 좀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게 다짐하고픈 상대가 엄마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봐 줄 사람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엄마가 작아지지 않도록 지켜봐 줄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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