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손동 집 세입자가 정해졌다고 들었다.
평일엔 집을 보여주기가 어려워 부동산에 열쇠를 맡긴 다음날 바로 집을 보러 왔고, 그 세입자가 계약을 했다고 한다.
투덜투덜대면서 4년을 지낸 집에 이제 공간을 비워주어야 하고 새로운사람이 들어와 산다는 게 기분이 묘했다.
그 동안 쓸고 닦고 몸을 부비던 낡은 상자 같은 이 집에 다른 사람이 담겨 살아갈 것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첫 독립공간이었고, 첫 이상과 현실의 거주공간 타협지점이었다.
나름 많은 주변인들이 다녀갔고 많은 일들을 했다.
부엌으로 방으로 내 모습의 행동 그림자가 겹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순간 코 끝이 찡했다.
날씨가 추워졌다.
봄을 앞둔 막바지 추위가 혼신의 힘을 다해 ‘나 아직 죽지 않았어‘ 하고 안달을 내는 것 같다.
내손동 집에 사는 겨울 내내 참 추웠었다.
이렇게 흉흉하게 바람이 드나드는 집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네 번의 겨울을 잘도 버텨냈다.
그리고 막상 떠날 시일이 가까워지자 추위에 많이 단련되어진 느낌이 들었다.
못살 것 같아 에서 그럭저럭 살아보니 추운 집을 버티는 DNA를 얻게된 느낌이다.
동물은 진화한다고 했으니 나의 몸도 적응해가지 않았을까 ?
물론, 고통스러운 느낌마저 없어진 건 아니어서 엄마집으로 피신, 난방기구 의존 등으로 요령을 부리긴 했다.
하지만 강해졌다는 기분은 확실하다.
수원역에서 정자역까지 15정거장. 역시나멀다.
정직하게도 수원에서 용인 분당쪽으로 가까워 질수록 매물,전세 가격은높아져갔다.
집값의 이동수레가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좌에서 우로 그래프가 높아지는 모습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마지노선을 생각했다.
내가 이사를 한 출퇴근시간 절약의 보람이 될 수 있을만한 거리.
매탄권선 앞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이동하기로 선을 그어본다.
내가 얼마나 더 소득활동을 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많이 돈을 모을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른편 이동의 시작점에 이제 막 올라선 기분이라 결연한 용기가 생긴다.
일사천리로 전세집을 계약했다.
당초의 생각은 4년전 첫 독립을 준비하며 집을 보러 다녔던 것처럼부동산 중개인들과 함께 원룸,다세대주택,빌라 등 매물을 함께보고 상담도 받아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4년사이에 부동산 시장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근거지로 선택한영통쪽 지역의 특수성인지 문전 박대식의 ‘매물없어요’ 소리만들어야 했다.
일단 부동산에 가서 알아봐야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해서일까 싶었지만 그 전에도 인터넷으로 여러 날의 검색과 지역수집을했던 나로서는 조금 속상해졌다.
부동산에 가기 직전까지도 ‘가능하면 회사와 가까워 질 수 있는 곳’ ‘가능하면 지하철역에 닿아 있는 곳’ ‘ 가능하면 5천미만의 전세’를 생각하느라 똑 부러지게 건져둔 정보가 없었던 것이다.
그 어리숙함이 출입문 고리만 잡았을 뿐인데 티가 난 것 같아서,그누구도 가여워해줄 이유가 없기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부랴부랴 어플을 설치해 지금 당장 보러 갈 수 있는 곳을 추려 전화를 했고 이후부터는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집을 보고, 설명을 듣고 나니 어느새 계약금을 이체하고 있었다.
홀린 듯 마음에 들었고 머리 속엔 살고 있는 세입자의 짐을 걷어내고 나만의 방으로 이미 꾸미고 있었다.
오늘은 다소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사 가려는 곡반정동에 살고 있는 세입자가 3월20일이 아니라 25일 오전에나 되어야 짐을 뺄 수 있다고 했다.
20일 짐이 빠지면 하루 그 집으로 가서 방 사이즈와 방을 꾸밀 배치를대략 익혀올 생각이었고,
버리고 올 가구와 새로 사서 들어올 가구들을 미리 정리해보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아진 것이다.
관리비에 포함된 인터넷비 따로, 위약금 없는 해지가 안되는 내 개인인터넷 따로 이중 과금으로 사용하게 생겼고 인터넷 해지 위약금은 40만원이나 된다고 했다.
정리해보면 인터넷비 포함된 관리비 6만5천원에 내 개인 인터넷 2만2천원+전기세+수도세를 별도로 내면 난 분명 전셋집을 계약했는데 월세로 살고있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발의 악재는 악세서리장을 새로 색칠해 보겠다며 페인트칠 전 젯소를 입히는 과정에도 벌어졌다.
무거운 거울장과 지지하고 있던 지지대 사이의 나사를 풀면서 ‘ 이거갑자기 쿵하고 떨어지는거 아니야 ? ‘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엄지발톱 위로 뚝 떨어졌다.
당시엔 아이고 아파라 낑낑거리다가 아픔이 좀 가시길래 괜찮을 줄 알았는데 하루 지나고 보니 바닥을 디딜 때 욱씬거렸다.
어리광 부릴 사람이 엄마밖에 없는지라 나 아픈데 병원에 가야 할까 안가도 될까 하며 시덥지 않은 문제를 고해바치다 본전도 못 찾았다.
괜히 전화해서 사서 서운함을 만든 꼴이었다.
유난히 이번 이사준비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첫 독립집에서 처음 옮겨가는 것이지만 커져버린 짐이 많은 탓에 처분하는 문제가 많이신경쓰였다.
세탁기와 냉장고는 중고나라에 무료 물품으로 내어두니 가지러 온다고 약속해놓고서 오지도 않았고 장롱은 어떻게 밖으로빼내야 할지 걱정과 한숨이 줄줄 이어졌다.
새로 장만한 가구들과 재활용차 활용하기로 한 페인트칠한 가구들은 망가지지 않고 무사히 옮길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잔금 치르는 일도 확실하게 아는것도 없었다.
서른도 넘었는데 엄마가 없었으면 어쩌나 싶은 일들 뿐이다.
새 집주인쪽으로잔금 이체하는 일자,시간대로 문제가 있었다
부동산계약을 하면서 느낀바 이지만 법이란게 잘 알지도 못하고 ‘네네’했다가 얼마나 사람이 무지렁하게 작아지게 하는지를 일깨워주었다.
엄마보다 컴퓨터를 잘한다고 해서 전자상거래를 자주 이용한다고 해서 무엇이든 이제는 내가 엄마보다 잘하게 될 줄알았다.
그리고 이제는 엄마를 끌어주는 든든한 딸이 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인터넷 결제를 해주고 이것도 못하냐고 타박을 주던 내가 참 매정했었던거다.
어렵고 복잡하고 껄끄러운 부동산 일들을 엄마한테 의지해버렸다.
엄마가 아니고서 ‘이번 일로 내 딸이 많이 스트레스 받고 있다’라고 얘기해줄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하고 힘있는 위로는 편들어 주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유치하고 공정하지 못해도 한껏 내편을 들어주는 이가있어 왈콱 감동을 받곤 한다.
매일 엄마의 자리가 더 크고 단단하게 매워져 간다.
빠져나간 구멍의 크기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아, 나는 한 몸처럼 엄마에게 엉겨 붙어 있는 존재였다.
고맙고 미안하고 죄송하고 또 감사해서 아무 표현도 할 수가 없었다.
잘 챙겨주었던 내손동집 계약서를 분실했다.
아니지, 정리한답시고 내손으로 박박 찢어버렸던 것 같으니 분실은 아니다.
대체 보증금도 빼기전에 계약서는 왜 찢어버렸을까.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때가 차라리 더 현명했을까 싶을 정도로 이사 날짜도 넉넉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이것 저것 서둘다 설레발치며 정리하다 제대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래한 부동산도 기억못해, 전 집주인한테 전화할 용기도 없어, 대체 왜 이렇게 일처리를 할 수 밖에 없나 한심해 죽겠다.
으슬으슬 몸이 아프다.
구글링으로4년전에 거래한 부동산을 찾아내어 계약서 사본을 받았다. 확정일자신고 내역과 계약금,보증금 이체 영수증도 출력해두었다.
3월26일 드디어 이사를 했다.
정리정돈이라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취미나 특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뾰족이 골라 적을 답이 없어 그래도 정리정돈은 잘 하는 편이니 그걸로 적어내야겠다했던 날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익숙한 공간에서 이것과 저것을 합쳐 공간을 만들어내거나, 물건을 사서공간을 채우는 것은 특별히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길러진 감각 같은 것이었음을 알아채게 되었다.
이마저 없다, 돼지우리 같은 방구석에 있겠다 하는 사람들은 인테리어에관심이 없거나 외면 중에 있는 부류일 것이다.
무튼 어느 정도 재주 좀 부릴 줄 안다 할 적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발휘를 해야 하는데 이번 이사로 ‘ 나 정도면 깔끔하게 사는 편이지’ 했던 생각이 겸손해졌다.
이 사전 잔뜩 들떠서 이것저것 사다모은 잡화들은 막상 이삿짐을 풀고보니 마땅히 썩 어울리지 않거나 생각했던 기능이제 역활을 하지 못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사람이나 사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을 꾸미는 것에 더 확연하게 와닿았다.
그렇게해서 후라이팬정리대, 욕실부착용 걸이 정리함, 주방 마스킹 테이프 등등 사용하기 애매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은 각과 구도라는 이름의 애물단지 물건이 늘어나고실패한 과소비의 패배감을 곱씹으며 반성하고 있기는커녕 이 장소에 어울리는 물건을 찾고 말겠어 ! 라는사명감에 더 불타오를 뿐이었다.
(수중의 통장잔고도 불타버렸고.)
단순하게 살기,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었던 한때의 내가 코웃음을 치며비소를 날리고 간다.
비워내는 것 ?
쉽다. 버리면 되니까.
문제는 비워진 공간의 여백만큼 여유는 깃들고 욕심은 함께 떠나갔는가이다.
버리고 사고 버리고 사는 무한반복의 절제도 이사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 새공간이 익숙한 공간으로 안정기에 접어들게 되면 비워낼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
버림의 미학에서 오는 평정심보다 투자한 돈만큼 제기능을 다하는 물건과의 만남이 아직은 더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