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나야 산다

by 사막물고기
조금 덜 만나고 조금 덜 기대하며 많은 약속 않기로 해요.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가수 도원경이 불렀던 노래 중 가사인데, 주제가 되는 사랑에 관하여서뿐만 아니라 요즘 내 삶의 전조를 어우르고 있는 생각의 축약본과 같은 문장이다.


섣부른 기대들과 때를 모르고 치고 오르던 들뜸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알아가도 되었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져도 됐었다.

짧게 보여준 미소에 설레었고, 작은 친절에 온 밤을 새우며 소설을 쓰고 가정을 이어 붙여 하룻밤 사이에도 집 하나는 거뜬히 잡아먹을 눈사람을 만들었었다.

반대로 눈송이 송이 허파에 바람을 잔뜩 불어 뭉쳐 둘 때는 언제이고 허물어뜨리는 건 어찌나 빠르던지.

이성적인 사계의 흐름에 따르지 않는 풍경들은 나의 치부이자 그래도 조금은 독특할 수 있었던 애증의 구석이었다.


그 시절엔 다들 불안했었고, 어리석은 실수들을 하고 그럴 수도 있다고 서로 다독여주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이상하던 나도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과도기의 사람이라고, 이번에도 운이 좋지 않았을 뿐이라고만 생각해도 위로가 되었다.


시간은 지나가는 것이지만 때로는 되돌아오기도 한다.

고통의 단편과 자주 베이던 생채기는 모서리 끝이 무디어져 가슴 바짝 붙어와 있어도 으레 지나가려니 한다.

지나갔구나 싶어 안심하고 있다 보면 떠나갈 적에 마주친 멍울들이 지하철의 상 하행 교차처럼 마주친다.


외로운 사람이라는 핑계로 많은 사람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지.


혼자 있던 시간이 많이 있었다고 사람들과 함께할 적엔 즐거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여럿인 와중에도 혼자 같은 기분일 줄 몰랐지.


차분하게 주어진 일을 욕심내지 않고 하는 것이 안정화에 접어든 업무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었다.

눈 앞에서 제쳐질 허수아비가 될 줄 몰랐지.


가슴이 뛴 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기대라는 단어는 감히 품어질 수 있는 말인가 싶어 아득한데

아직도 실망할 일이 많고 더 내려갈 곳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덜 아파보겠다고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아보겠다고 했는데 지키고만 있는 자리에도

허전할 일이 생기고, 뒤로 처지는 기분이 만들어지는 게 참 신기하다.


세상은 참 다양하고 자세하게도 나의 모자란 부분들을 잊지 않고 챙겨주며 반성하고, 자책하고, 탓하고, 원망스러울 수 있도록 부단히 도와준다.


감사하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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