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싫었다.
사랑 받고 자란 사람 혹은 여자들이 구김살이 없고,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말.
아무리 갖가지 계층과 분별기준으로 자기들만의 논리를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내가 사람 여럿 만나봤는데 이게사실이야’라는 식으로 선동하는 세상이라지만, 유독 잔인한 말이다. 그건.
사랑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기억하지 못하는 저편 어딘가에는 따뜻한 시선과 돌봄을 받던 시절이 분명 있다.
사랑은 갚아 나가야 하는 빚이거나, 저장고가 아닌데 받은 만큼 줄 수 있다는 같잖은 이론은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고 씩씩거린다.
아무도 안고 싶지 않고, 배려해주고 싶지 않은 지금의 내 모습이 참 삭막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늘 나를 아껴주고 걱정하는 엄마와 몇 되지않은 친구들과의 좋은 추억이 사랑 없던 날들로 폄하 되는 건 싫었다.
내가 점점 정이 없고 모진 사람이 되어 갈수록 그 말이 미웠다.
받은 게 없으니까 이렇다!!! 하며 현재 딛고 있는 황무지를 설명하기엔 미안해지는 사람들이 있어 찜찜했고 고른 토양과 적당한 빛이 있었는데 왜 고것밖에 자라지 못했느냐고 비난 받을 것 같아 무서웠다.
그 두려움이야 어찌되었건, 그 말을 신경 쓰고 있다는 이유였고, 신경이 가는 반증은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하며 새로 고쳐 묻고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히나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협조나 수주의 부탁이 들어왔을 때 더 삐딱하고 꼬인 기분이 든다.
이 나이에 이 일밖에 하고 있지 못한다는 자격지심에 울컥거리고 내가 그 사람 위치였다면 이름을 걸고, 책임지고 했을 텐데 싶은 일들이 성의 없이 나에게던져지니 더 서글퍼졌다.
이것 좀 해 주시겠어요? 나는 던져본 적 없는 일들을 남들은 나에게 잘도 던진다.
그건, 그사람이 자기 일을 미루는 것도 맞지만, 내가 일을 던질 포수의 위치였던 적이 없어서 이기도 했다.
인과응보로 굴러가는 건 일에선 예외다. 아니 동화책에서만 가능했나?
그러니까 사랑 받는 사람이 줄 수 있다 하는 어쩌구의 소리가 이 상황에 생각나봐야 소용이 없는 건데 타인의 도움을 많이 받고 고마워하며 자란 기억이 있는 아이들은 고작 이런 일에 온갖 비애감을 느끼지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기회라고, 서슴없이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직 나처럼 애매하게 자기 정립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준 것도 없으면서 호의만 받아 쳐먹으려고 한다며 부득부득 이를 가는 중일지 모르겠다.
세상에 대체 이 화와 분노는 다 뭐란 말인가.
무슨 의미가 있고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어지럽고 메스껍다. 교통카드가 두 번이나 찍혀서 짜증이 났던 거다. 다른 이유가 아니다.
버스에 내릴때 찍은 지갑 안의 카드 대신 가방안에 다른 카드가 찍히는 소리가 구슬펐을 뿐이다.
난데 없는 그 소리가 슬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