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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Jan 23. 2018

[책]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작가의 소설책 '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었다. 

군사 정권 속 혼란에 투쟁하는 젊은이들과 로맨스의 이야기로 이어질 것 같았던 초반부는 
시대와 체제 아래 자유를 억압받던 등장인물들이 추가되고 인물의 삶이 덧붙여지면서 쉽게 감상평을 쓰기 어려운 소설로 마지막 장을 덮었다. 

민주 항쟁과 분단국가의 사상 등 역사적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조금 더 깊이 있게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80-90년대 당시 한국 사회의 지성인들은,폐쇄적이고 강압적인 사상 강요에도 금서를 찾아 배우고 스스로 분별하여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유대하며 사회개혁 의지를 가졌기에 지금의 어느 정도 구색이 갖추어진 자유국가를 쟁취할 수 있었다. 

강압적 수사와 인권유린이 당연했던 혼란의 시대에 국가의 대의와 명분이라는 이름아래 차곡차곡 짓밟힌 '두 번 산 인물' 강시우를 집중 조명하면서 단순한 자유 탄압 실상 기고에 관한 소설은 아님을, 그보다 더 확장된 관념을 보여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시대적 폭력에 흘러흘러 살아온 찢겨진 강시우의 일생에서 국가에 의해 핍박된 삶을 보여주고자 함인지, 그럼에도 개인의 꺾이지 않는 자유 항쟁 의지를 고취시키고자 함이었는지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시우의 삶을 조사하는 화자 '나'의 입을 빌려서도 전부, 모두 맞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했다. 

동독, 서독의 독일 분단국가와 유태인 탄압의 이야기 속에는 정치적 대립구도가 아닌 사랑이 없는 개인의 몰이해로 유래된 비극처럼 표현된 구절도 있다. 

국가와 역사와 사회가 만들어지는 데에 한 편만이 정의와 분명한 옳고 그름으로 흘러온 것이 아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무겁고 장황한 개인이자 개인이 대변하고 있었던 시대의 이야기가 많이 혼재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 강시우의 대북행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그저 자유롭게 사랑하고 표현하고 살고 싶었을 뿐인데 시대에 휘둘리고 공권력에 이용당하면서 진절머리나게 차근차근 죽어간 사람의 마지막 복수는 국가를 등지는 것인지, 다른 체제 안에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의 의사표시인지 애매했다. 

둘 중 혹은 그 이상의 독자만의 판단과 해석을 내릴 수 없는 나의 무지함도 원망스러웠다. 

나의 정체성에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이 국가이고, 국가가 휘두르는 크고 작은 영향 아래 개인의 생각,사상은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에 대하여 무비판적으로 당연하게 흡수되며 사는 지금을 한 번쯤 면밀히 생각해봐야겠다는 작은 경종을 느꼈다. 

독재, 폭력, 억압 나를 가두는 '네가 누구든' 그 속의 나는 '얼마나 외롭든' 희망이 있는 세상에 존재하겠다는 의지로 (미약하게나마) 이해하는것으로 마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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