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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May 07. 2018

남해 여행

친구와 티몬 여행상품을 예매해, 한번쯤 가보고 싶었으나 멀어서 엄두가 잘 나지 않았던 남해쪽을 다녀왔다.

https://www.ticketmonster.co.kr/deal/502317966?is_adult=N&adult_type=N&keyword=%EB%82%A8%ED%95%B4&reason=er&etype=nm&useArtistchaiRegion=Y


일전에 강원도 민둥산을 다녀오는 일정에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부지런한 하루를 느꼈다면 이번 남해로 가는 길은 밤 12시 성균관대에서 관광버스에 탑승해 새벽부터 일정을 도는 이틀같은 하루를 보낸 느낌이다.

목베게도 준비했고 새벽부터 점심까지 버티게 할 음식도 단단히 준비했다.
깜깜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달리는 동안 잠자는 일 밖에 없었지만 몸은 커지고 마음은 비좁아져서 그런지
유난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가고 오고 중간에 한번씩 들른 휴게소 휴식시간이 있었고, 주말 휴일을 고려해 사람이 몰리는 코스 시간대를 조정해준 덕에 비교적 막힘 없이 도착했다지만 10시간 남짓이었으나 체감은 그 이상의 시간을 의자에 꽁꽁 묶여 있다가 풀려난 것 처럼  앉아있는 것이 힘들었다.


칠흙같이 어두운 보리암 입구의 산길을 걸어가면서, 이 시간에 눈을 떠 걷고 있는것도 손 한뼘으로 감싸쥐면 사그라 들것만 같은 얕은 불빛에 의지해 걷는 길도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사람이 안하던 짓을 갑자기 하게 될때, 스스로의 존재를 의심하듯 걷고 있으면서도 꿈꾸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이 잠깐씩 들었다.



일출을 감상할 뷰 포인트가 서너곳 정도 되었다.
보리암 입구쪽 주차장, 정상쪽, 보리암 암자쪽 1곳, 그리고 다른 방향 한곳.
게중 하나로 정해 사람이 몰리기 전 자리를 맡아두고 있다가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이고 일출까지 시간이 좀 남아 절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가까워진 시간 언저리에 선택된 장소에서 구경해도 좋을 것이다.



산 등성이 너머로 희미하게 붉음이 피어오르다가 쑥쓰러운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후다닥 세수를 마치고 말간 얼굴을 하늘쪽으로 널어놓듯 일출 의식은 끝나 있었다.



위로는 걸릴 것 없이 하늘이고 주변에는 바다와 크고 작은 섬에 둘러 쌓인 무릉도원 같은 절이었다.
출가 상담이라는 현판의 글자를 보았다.
법당에서는 낮고 깊게 염불을 외우는 스님의 소리가 들렸다.
보리암 셔틀 버스를 타고서도 한참을 올라와야 했고, 올라와보니 주변은 망망한 바다와 바람소리를 품은 파도의 큰 너울거림 소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속세의 욕심을 다 비우지 못한채 도착했더라도 이 곳에 둥지를 틀어야 한다면 바람에 털고, 저 깊은 바다 어느쯤에 하나씩 묻어두고 관광객도 모두 떠난 밤엔 침묵속에 얼만큼 가벼워졌는지 비춰볼런지 모르겠다.


괜히 한번씩 출가를 하는 그런 상상을 한다.
다른 절에서는 몇십번 다시 환생해도 출가한 나의 모습은 전혀 그려지지 않는 막연한 상상일 뿐이었는데 보리암은 엄마가 보고 싶어 울고, 길가다 스친 사람도 그리워 울 것 같은 나약함을 곳곳에 걸어두어도 
이상할 리 없는 외롭고 처연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그 절의 출가상담이라는 글자가 더 비장해보였다.



해가 뜨고 어둠이 모두 도망간 뒤 정상에 올라 내려다 본 풍경은 또 달라져 있는것 같았다.
따뜻한 색을 품고 있는 해가 있는 하루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래서 특별할 것 없는 다짐이지만 마침표를 찍고 난 자리에 온기가 가시기전 새롭게 쓰는 계획들은 반짝거린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다랭이 마을이었다.
가이드분이 우스갯 소리로 바다와 인접해 있어 어촌인것 같지만 농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농촌이다 라고 했다.

언덕배기의 땅을 층층히 경작하여 이제 푸름이 돋기를 준비하는 생기가 멀리서 한눈으로 보면
더 힘있게 느껴졌다.

다랭이 마을은 논도, 길도 층층을 이루고 있어 둘러가는 길이 좁으면서도 담벽이 낮은 미로길을 걷는 것 같은 재미가 있다.



어느집은 마늘, 어느집은 허브, 어느집은 다육이 등등
기르고 재배하는 식물들도 다양하고 색색의 지붕과 아담하고 예쁜 집들이 쏙쏙 박혀 있다.
맞다, 박혀있다는 표현이 어울릴법한건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층층이 마을이란건 동화책 속에서나 있을것 같기 때문이다.



다랭이 마을에서 유명하다는 암수바위도 보았다.
기도를 들어주기 영험하다는 보리암도 다녀왔고 암수바위도 보았으니 또 기대를 걸어보게 된다.



작은 마을이라고 소개되어있지만 계단식 경사에, 꼭 꼭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식당과 산책 코스를 찾아가며 돌아보겠다고 작정하면 결코 작지 않은 마을인것 같다.
시간이 야속했다.
천천히 다육이도 구경하며 골라보고 싶었고 바위턱에 걸터 앉아 바다도 오래 보고 싶었고 마을 끝에서 끝까지 걷다가 막걸리도 정자에서 먹어보고 싶었다.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가야 다음에 오게되는게 여행이라니까
먼 곳 남해까지 다시 찾아올 결심을 위해 아쉬운 리스트를 속으로 세어놓는다.



세번째 여행지는 독일마을 이었다.



가평 쁘띠 프랑스보다 훨씬 더 마을다운 느낌을 주었다.
온기가 도는 것 같은 적색 벽돌 지붕과 하얀색 타일이 옹기 종기 모여 있었고 바다를 낀 마을의 풍경은 두말하면 입아프겠지만 역시 아름다웠다.



독일 거주 교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해주고 독일 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2001년부터 조성하여 개발되어 왔다고 한다.

저 예쁜 집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이 있을까 ? 싶을 정도로 마을 사람은 보이지 않고 관광객들만 거리를 걷고 있어 , 인형나라 타운 하우스 같은 느낌도 들었다.



커리 부어스트와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았다.
가게주인분이 참 상냥하셨다.

지금은 원예공원쪽은 볼 것이 없고 파독 전시관을 보는게 좋다는 추천에 따라 파독 전시관을 관람하고 나왔다.


1960년대 한국산업을 이끌었던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의 삶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비슷하게 그려냈었지만, 실제 입고 쓰고 간직했던 기증물품들을 보니 더 코가 시큰해졌다.


파독 간호사인 누님을 걱정하며 쓴 편지, 고국의 가족에게 꼬박 꼬박 부쳐진 급여의 송금계 등을 보며 나 하나가 아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뭉쳐진 희생정신이 나라를 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번째 이동지는 상주은모래비치였다.



제주의 바다만 깨끗하고, 정갈하고 눈에 담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 곳 남해바다도 참 청량했다.



무엇보다 모래가 너무 고왔다.

포슬거리는 느낌이 손안에서도 부드러웠고 모래에 글씨를 쓰면 파도가 언제 뭘 적었냐는듯 무심히 지워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고, 함께온 사람의 이름을 적고, 그리고 짧은 말을 곁들여 적기도 한다.


곁에 있는 사람이 바뀔때 종이위에 글은 영원히 남아 가끔은 버리고 싶어 질때도 있지만 모래위의 글은 파도가 들이닥치기 전 찰나의 순간만을 허락한다.


그래서 아무리 유치하다고 생각되어도 쓰고 또 써볼 것이다.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고, 걸었다.

발가락 사이사이로 모래가 짓이겨지는 느낌이 좋았다.

아직 한참 이른 것 같았지만 바다에 뛰어든 청춘들도 보였다.

철 모르는 용기들은 대부분 청춘들이더라.

부러웠다.

나에겐 때이른 열망도, 때지난 도전도 없이 몸을 사리고 욕구를 숨겼다.

못해본것만 자꾸 마음에 남아 가엽다가도 스스로 어리광에 매번 져주고 있어 쥐어패주고 싶기도 하다.



작고 귀여운 조개도 많았다.
환호성을 지르며 조개를 골라 비닐봉지에 담았다.

집에 가져가 깨끗하게 모래를 씻기고 작은 유리병이나, 그릇에 담아놔야지 생각했다.

언젠가 잊혀질지라도, 어차피 버려지게 될지라도 한번은 소중함을 지기키위해 노력해봐야겠다.



바닷물이 투명해서 발을 담그고 꼼지락 대고 있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겠다.

내 발을 보는 것, 친구의 발을 보는 것, 바다를 보는 다른 사람의 등을 보는 것, 하릴 없이 멍 때리는 기분의 나른함이 지겹지 않은 곳이 아마 바닷가일것이다.



마지막으로 경남 삼천과 사천을 잇는다는 삼천포대교를 보았다.



케이블카가 생긴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케이블카를 지지하는 철탑의 웅장함에 한번 놀랐고

의외로 씽씽속도가 붙는 것 같은 케이블카에 두번 놀랐다.



배 앞머리를 닮은 전망대에 마지막 발도장을 찍고, 버스에 올랐다.



서른 셋이나 되었음에도 아직 우리나라 안에서도 가보지 못한 곳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나오면 집구석이 제일 좋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떠나온 곳이 내 집이 되었으면 좋겠을 정도로 지역의 좋은점도, 정도 잘 느끼는 편이면서 집을 떠나기까지가 제일 어렵다.

내 방 문고리가 아마 세상에서 제일 무거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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