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길고양이를 만났다.
고양이들은 대체로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라는 것은 알지만 곁에 다가온 고양이는 한번도 없었다.
해치지 않아, 천천히 갈게라는 온갖 시그널을 보내보아도 냉큼 사라져버리곤 했었는데,
그날은 자그마한 고등어색 고양이가 먼저 다가와 무릎을 한참 부벼주고 갔다.
꼬리가 사뿐히 올라가면서 조근 조근 맴돌다가는 고양이가 사랑스러워 심장이 쿵쾅댔다.
목적과 악의 없이 다가와주는 설레임을 오래 잊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인기가 없이 살아온 편이다.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먼저 건네고,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를 써도 기대한 만큼의 호감을 얻기 어려웠다.
만남에서 조금 친해졌다고 느끼는 단계까지 올라서는 과정이 있었고, 그 결과로 친구와 연인이 있었겠지만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소위 요즘애들이 쓰는 은어식 언어로 인싸,아싸를 구분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아싸편에 끼이겠지만 가슴속엔 인싸의 열망이 있었다.
무리에 들어가기 힘들어하고, 긴장하는 사람들의 손을 끌어주고 싶지만, 나 역시도 인도하는 손길이 필요한 제 앞길 바쁜 사람일 뿐이었다.
손을 내미는 사람과, 포개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응력이 높다고 하는 인싸형의 사람을 관찰해보면 그들 역시도 긴장과,구성원에 섞이기 위한 어색한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그 다른점으로 인 아싸의 경계를 구분짓는 것이라면 아싸형의 사람들 보다 인싸형의 사람들이 말과 행동에 자연스러운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대화속에서 살을 붙여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하고, 타인의 생활을 물어봐주고 들어주는데 버퍼링 없는 고화질 영상처럼 매끄럽게 흐른다.
부럽다.
동작과 말 사이에 자연스럽지 못한 구석이 있는 편이었고, 유하게 흘러가지 않았던 장면들을 곱씹다 보면 내 일상의 영화는 망작이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었다.
매번 그런것은 아니었고 컨디션 고저에 따라 달랐다.
어떤 날은 상담가 못지 않게 맺고 끊고 조언해주는 대화의 타이밍이 잘 맞아 떨어질 때가 있었고 또 어느날은 스피치 학원이라도 고려해 봐야 할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다.
예상할 수 없는 내 모습이 있다는 것은 사람들을 만날때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태도가 된다.
그나마 강아지와 고양이는 아무 준비없이 만나도, 매일 만나도 편하게 또 볼 수 있는 동물이었다.
13년째 함께 살고 있는 강아지 동글이는 요즘 방광쪽이 좋지 않다.
소변색도 진하고, 엉덩이쪽에 물 혹같은 혹이 볼록 올라왔다.
병원에선 물을 많이 먹게 하라고 하는데 자기 몸이 전같지 않다는걸 느끼는지 침대 밑으로 숨어 있을때가 많다.
강아지는 죽을때가 되면 주인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어두운 곳으로 숨는 동글이를 보면 걱정도 되고 서운하면서 무서운 생각이 든다.
맨사료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고구마,계란,브로콜리,연어파우더,북어가루 등등 메뉴를 바꾸어 가며 사료에 섞어주어야 먹는다.
마음에 드는 음식이면 허겁지겁, 그렇지 않으면 깨작깨작.
주인 귀찮게 하는 강아지라고 투덜거렸던 적도 있지만 사람도 같은 음식만 먹으라 하면 며칠도 못가 질려버릴것을 맨사료만 팍팍 먹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돌아가며 섞어주는 재료는 한계가 있고 이것도 질렸고 저것도 질렸다 싶어 먹지 않고 버틸때는 버릇을 고쳐주고 싶은 오기가 발동한다.
반찬투정할거면 먹지마 ! 하고 밥그릇을 뺏는 엄마의 마음으로 빙의해 다 먹기 전까지는 새로운 재료를 섞어주지 않는다.
그러면 꼭 삐진다.
불러도 쳐다도 보지 않고 나 지금 화났어 라는 티를 팍팍낸다.
입을 오물 오물 거리는것을 보니 언젠가 정말 사람말을 할 것 같다.
울적할때나 기쁠때나 이 아이는 나의 기분을 살펴봐주며 함께 있는 것에 의심을 주지 않는다.
가까워졌다 멀어지고, 찾아주는 사람 하나 없을까봐 전전긍긍하고 무심한 사람들 속에 지칠때면
우리가 함께 있는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라고 앙 다문듯한
강아지의 까만 입술을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