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스럽게도 원래대로라면 10-1코스 가파도를 갔어야 하는 날이고, 만약 미리 가파도에 다녀오지 않았다면(5월3일 일요일, 10-1 가파도 코스를 먼저 걸었다.) 풍랑주의보가 발령된 오늘 배를 타지 못했을 것이고 올레길 완주 일정이 꼬여버렸을 거다.
어쩐지 가파도는 미리 다녀와야 할 것 같았다.
섬으로 들어가는건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를 일이고, 4년전에 그렇게 가파도에 갇혀 하룻밤을 묵었기 때문이다.
모든 올레길을 돌아본, 오늘에서야 비가오면 오는대로 느긋해질 수 있었다.
완주 증서를 받기 위해 고성리에서 201번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 걸려 올레 여행자 센터에 도착했다.
6코스 종점, 7코스 시작, 7-1코스 종점이 이 여행자센터였기 때문에 횟수로는 벌써 4번째 방문이 된 셈이다.
그동안 스템프를 찍었던 올레 패스포드를 전달해드렸고, 스템프가 제대로 찍혔는지 검사후, 완주 증서와 메달을 받을 수 있었다
센터 직원분께서 완주증서의 문구를 한글자 한글자 읽어주실때 약 425km를 걸어 모든 코스를 돌아보았음이 실감되었다.
별생각 없이 시큰둥했던 전날의 종주 느낌과는 다르게 이번엔 뭉클하고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센터에 있던 직원분들, 손님들이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내가 뭐라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축하해주고, 박수를 보내줄까 이유없는 선의가 참 부담스럽다가도 쿡쿡 쑤셔오는 감동을 받기도 한다.
올레길을 걷기로 한 다짐의 시작은 다소 충동적이었다.
퇴사를 했고, 내가 그만두겠다고 말은했지만 잘린거나 다름없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는것 같았다.
직업이 변변치 않은 미혼의 서른다섯살.
이 초라한 수식어가 냉정하지만 객관화된 나의 꼬리표였다.
직장을 그만둔 시점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마침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찰나에, 집에 가만히 있는것이 모두를 위해 좋을 지침으로 권장되고 있었다.
오래 알아온 친구 두명과 소원해졌다.
자세한 상황은 달랐지만 큰 틀은 내가 그들을 잘 챙기지 못했고, 피하기에 급급하다는것을 들켜버린것에 있었다.
불편하고 껄끄러운 상황들을 정정당당하게 마주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는걸, 나 역시도 새롭게 깨달았다.
거절의 의사를 전달하는것보다, 침묵하는것을 택했고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거라는 반성이 이제서야 된다.
당시 상황에서는, 나를 귀찮게하고, 내 시간을 방해하는 무례한 행동이라고 화만 바득바득 났었다.
집에 오래 있다보니, 가족들과 트러블이 생겼다.
나에게 손찌검을 하려 한 2살차이 남동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당화할 수 없는 잘못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생과 나 사이가 이렇게 골이 깊을 수 밖에 없는 배경에는 사이를 개선시키고자 노력하지 않은 나의 문제도 분명 있었다.
엄마에게 점점 서운한게 많아졌다.
혼자 끙끙 참고 있다고,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 엄마탓이라는 원망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제주로 도망쳤고,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아 올레길을 걸었다.
4년전 제주에 왔던건 마지막 연애가 수포로 돌아가고 ' 아 나는 사랑을 줄수도 받을 수도 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죽을것 같아서였다.
그때에도 올레길을 걸었고, 막연하게 언젠가 모든 코스를 걸어 완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쾌활한 시작은 아니었지만, 계기가 어떻게 되었든 길을 걷는것에 좋을 이유는 따로 없었을 것이다.
시작 초반에는 마음도 소란했고, 몸은 갑작스럽게 긴 거리를 걷는다고 갖가지 통증으로 요란했다.
직장상사는 왜 나를 뒤에서 험담했을까, 직장 동료는 왜이리 가식적이게 내 속을 긁는가, 내 친구들은 왜그리 갑작스럽게 나를 불러내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것들을 같이 하자고 할까, 동생은 왜 잊을만하면 주먹을 드는가, 엄마는 왜 동생을 바로 잡지 못하고 방관하다가 이제는 엄한 사람에게 잘못이라고 상처를 주는가 등등등등....
미움과 원망이 파도에 밀려왔다가 나의 이기심과 잘못도 있다는 생각을 썰물에 실어보냈다.
반짝 반짝 윤이나게 잔물결을 살랑이는 고요한 바다를 보는게 점점 편안해졌다.
하루에 한코스씩 일정이 끝나면 숙소에 돌아와 그날을 정리하는 글을 썼다.
올레길 코스 설명과 길의 역사적 사실 등의 정보는 거의 전무하다 싶은 철저히 내 감정 위주의 글들이었다.
우스갯 소리로 ' 이런건 니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쓰고 포도알이나 받아 ' 라고 쏘아주고 싶기도 했지만 하루 하루, 어떤 마음으로 걸었는지 기억하고 싶었다.
더이상 제주에는 울면서 떠밀려 오듯 오고 싶지 않았다.
이 글을 오래 볼 유일한 독자일 나를 위해서 이렇게 걸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툭하면 포기하고 도망쳤지만, 올레길을 완주한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아 다시 길 위에 서보자는 용기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