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다시 시작

올레10코스(화순-모슬포올레)

by 사막물고기

전날 저녁에는 마지막 코스를 앞두고 종종 함께 발을 맞춰 걸었던 선생님 세분과 치킨과 맥주를 먹었다ㆍ


완주를 미리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했다,소감이 어떠냐 등등의 대화가 오갔다ㆍ

필요하지 않은 친절은 주고 받지 않는게 좋다고 평소 생각했지만 열살, 스무살 나이차이가 나는 선생님들이 툭툭 던져주는 배려와 친절 덕분에 길위에서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ㆍ


체력의 한계로 턱끝까지 울분이 올라찼을때도 등산스틱을 빌려주며 기다려주셨고, 먼저 제주도를 떠난 아가다 선생님은 나의 마지막날을 잊지 않고 카톡을 보내주셨다ㆍ


자잘자잘하게 맛있는 간식을 얻어먹고 (물론 그만큼 나도 보답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ㆍ) 사진을 찍어주며 길위의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던 시간이었다ㆍ


혼자 걷는 시간을 무척 사랑하고 편안해 했지만 팔할중 이할의 허전함을 채워준 선생님들이 있어, 홀로된 시간을 더 아끼고 애정할 수 있었다ㆍ


나의 올레길 마지막 코스인 10코스를 걸었다ㆍ

올레길은 길에서 길로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에 1코스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되며, 내가 선택한 코스가 시작점이 될 수 있다ㆍ

모두가 출발점이 다를 수 있고 걷는 속도도 다르고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걸음의 수도 다를 것이다ㆍ


자신만의 걸음을 찾아갈 수 있는 순환의 고리가 길로 펼쳐져 있다ㆍ

10코스는 나에겐 미지의 코스였다ㆍ

4년전 제주여행을 와, 약 15개의 올레길을 걸었을때도 10코스는 길의 회복을 위한 안식년에 잠들어 있었다ㆍ


그리고 무성한 소문을 들었다ㆍ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꼽힌 길이며 계속 걷고 싶어지는 특별한 길이라는 소문들을ㆍ

그 길을 걸어볼 수 있어서, 그 길이 마지막 종주길이 될 수 있어서 운명적이라고 생각했다ㆍ

썩은다리 전망대를 숨가쁘게 오르고 내려와 화순금모래 해수욕장을 통과했다ㆍ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과 자칫 발목이 꺾이면 큰 일이 날것 같은 돌무더기를 건너 평탄한 사계포구 해안길을 걸었다ㆍ

왼쪽엔 바다 절경을 끼고 오른쪽엔 산방산이 따라왔다ㆍ

가물가물 날이 흐려지기도 했지만 산방산,송악산, 저 멀리의 형제섬.가파도를 넘겨다 보기엔 무리없는 날씨였다ㆍ

형제섬을 마주보는 해안도로 쪽에서 보말칼국수와 보말죽 점심을 먹었다ㆍ

평소 점심은 계란이나 감자,고구마,단팥빵 등 간단히 먹을 수 있는것들을 가볍게 들고 다니며 먹었는데 마지막이라는 이유로 어제부터 꽤나 배를 채우고 있었다ㆍ

배부른 점심을 먹고 송악산을 올라가려니 배에 납덩어리가 얹어진것 처럼 몸이 무거웠다ㆍ

길위에서 만이라도 먹는 욕심을 조금 줄여보자고 생각했고 여러날은 잘 지킨편이나 뭐라도 챙겨주고,먹여주고 싶어하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뿌리치긴 힘들었다ㆍ


행복한 고민같은 소리를 두고 배부른 소리라고 하는지 알것 같다ㆍ

사람의 배를 채워주는건, 단순히 음식물 섭취가 아니라 그 사람을 챙겨주는 이들의 정이 몇숟가락은 더 얹어져 있는 것이다ㆍ

송악산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ㆍ

정상 탐방로는 폐쇄되어 있었다ㆍ

잘 정비된 데크길 계단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푸른 바다와 파릇한 초목을 고루고루 눈에담고 마음에 심어갈 수 있었다ㆍ


진정한 산과 오름의 주인은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ㆍ

어느곳에서도 자유롭게 방목되어 똥싸고 풀을 뜯고 있으니까 말이다ㆍ

사람이라는 동물이 가장 많은 제약을 받고, 규칙과 법규를 지키며 살고 있다ㆍ

해송으로 덮여 있는 송악산의 둘레길이자 절울이오름은 파도가 소리쳐 운다는 뜻이라고 한다ㆍ

사진에서는 멀리 보이지만 눈에서는 훨씬 가깝게 보이는 가파도가 반가웠다ㆍ

청보리의 계절이 아니라서 가파도의 색은 노르스름하게 구워진 빵 같았다ㆍ

4.3희생자의 추모비와 소녀상이 있는 섯알오름을 지나 종점 스템프가 있는 하모체육공원까지는 걷는듯, 뛰는듯 할 정도로 속도를 냈다ㆍ

가을운동회를 떠오르게 하는 하늘이었다ㆍ

나는 달리기를 제일 싫어했었고 달리기 때문에 운동회는 늘 피하고 싶어했다ㆍ

한번도 1,2,3 순위안에 든적이 없었고 꼴찌를 면하는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ㆍ


인생은 마라톤과 비견하여 표현되곤 한다ㆍ

단거리 달리기도 힘들었던 내가 마라톤이라고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ㆍ


실제 장거리 달리기는 물론 인생이라는 마라톤도 달리다 포기하고 나자빠져 있기 일쑤였다ㆍ


마지막 스템프를 찍고, 달리는건 소질이 없겠지만 걷는건 그래도 해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묘한 희망감이 부풀어 올랐다ㆍ


빨리 도착하자고 애쓰지 않아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한다ㆍ

나보다 먼저 앞서 갔던 사람들,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정해진 순서 없이 제 갈길을 간다ㆍ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앞,뒤 배경이 되어 찬찬히 내인생에 집중하며 살면 되는것이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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