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일출

올레9코스(대평-화순올레)+용머리해안

by 사막물고기

7명의 선생님들과 성산일출봉 해돋이를 보러가기로 했다ㆍ

새벽 4시 30분에 만나기로 하고, 일찍 잠들고자 밤9시부터 자리에 누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눈이 말똥말똥 해지며 힘이 들어갔다ㆍ


올레코스 완주 막바지에 가까워질수록 집에 돌아가 현실을 살아야하는 걱정이 커졌다ㆍ

제주는 꿈결같은 곳이었다ㆍ

나의 할일은 오로지 먹고, 걸으며 새파란 자연을 가득 느끼기만 하면 되었다ㆍ

매일 한코스씩 걸어야 한다는 작은 목표가 하루하루를 뿌듯해지게 했다ㆍ


지금 같아서는 하루, 그래도 잘살았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어떻게 보내야할지 알 듯 싶지만 이미 몸에 인이 박히도록 익숙해져 있는 원래의 습관을 고칠수 있을지는 자신하지 못하겠다ㆍ

오늘의 일출시간은 5시36분이었다ㆍ

5시가 되기전 성산일출봉을 오르기 시작했다ㆍ

어둠속에서 씩씩,쌕쌕 숨소리가 거칠게 퍼져나간다ㆍ

가로등 하나 없는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계단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는게 새삼 신기해졌다ㆍ

산봉우리에는 일출을 보러온 사람들이 속속 도착하면서 전망대는 붐비기 시작했다ㆍ

매일 뜨고 지는 해의 시작점을 바라본다는건,

수많은 날들중 하루쯤은 특별한 소회를 느껴보고자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ㆍ

나또한 그런 수많은 사람중에 한명일 뿐이었다ㆍ

한명의 개인사는 힘들고 기구하고 독특한 사연과 이유가 있을것 같지만 다수의 인생사는 다른듯 닮아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ㆍ

시련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가지만 내몫을 감당하는건 결코 쉽지 않다ㆍ


망망한 바다를 뚫고 끓어오르는 새빨간 점 하나의 상승을 보면서 가슴의 모든 응어리를 뜨겁게 모아 위로,위로, 그저 위로 묵묵히 솟구쳐 올라보자고 다짐했다ㆍ

고 손톱만큼 작았던 해가 하늘에 둥실 자유를 펼치고 나니 만물이 빛의 은혜를 입고 반짝이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ㆍ


해돋이의 명소에서 먼지한톨 끼이지 않는 깨끗한 하늘과 해를 만났다ㆍ

신의 은총을 자연의 그림으로 그려진다면 이런 풍경일까 싶다ㆍ

뜨끈한 해물 뚝배기를 먹었다ㆍ

딱새우라는걸 처음 까먹었다ㆍ

아직도 한번도 해보지 않은 경험들이 참 많다ㆍ

딱새우를 껍질을 까먹어보는것

새벽6시에 낯선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시는것

숙소로 돌아와 아침밥을 한번 더 먹은것은 오늘로서 해본 경험으로 넘겨본다ㆍ

대평포구에서 아찔한 박수기정을 올려다본다ㆍ

보여지는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상상을 해본다ㆍ

다행히 사람이 오르는 코스는 좁다란 숲길을 따라간다ㆍ

이전에 말들이 다닐 길로 만들었다는 물질을 지날땐 사람들의 발에 말굽이 달린것 같은 소리가 났다ㆍ

길에 깔린 깨진 돌들이 만들어내는 소리였다ㆍ

박수기정에서 봉수대를 지나 월라봉까지 이어지는 계속된 오르막이 땀을 쭉쭉 뽑아냈다ㆍ

흠뻑젖은 등판과 이마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이 끈끈하면서도 상쾌했다ㆍ


올해들어 제일 많은 땀을 흘린 기념일이겠다ㆍ

월라봉 전망대에서 올라온 세상을 내려다 볼 수 있었고 진모루동산을 지나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오면 지나왔던 높은 고개들을 올려다 볼 수 있었다ㆍ

높은곳에서 보면 건물도 도로도 이다지도 작아져 있고 사람따윈 보이지도 않는다ㆍ

그 보이지 않는 먼지 같은 존재들이 부대끼고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ㆍ


시야를 아주 넓게 가져보자는 생각을 해본다ㆍ

상처를 주는 존재들은 내가 발을 딛고 올라본 높이에선 먼지만한 크기라고ㆍ


바짝 산을탔던 올레9코스를 끝내고 용머리 해안에 도착했다ㆍ

용머리해안은 180만년전 수중폭발로 형성된 지형으로 해안을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는곳이다ㆍ


바다의 풍랑, 밀물의 들어참 정도에 따라 길이 열리지 않을때가 많다고 하는데 일출봉의 해를 마중나가며 맑을 날씨를 점치고 감동 받았던 기운이 용머리 해안길도 열어주었다ㆍ

산방산 앞에 우뚝 서있는 배는 17세기 하멜일행이

표착한것을 기념하기 위한 범선이었다ㆍ

우뚝솟은 산방산의 위엄이 둥글면서도 거대하게 느껴졌다ㆍ

용머리해안쪽 지질 역시 한번도 만나본적 없던 경관이었다ㆍ

어떻게 이런 지층을 가질 수 있을까, 가늠할 상상이 되지 않는 억겁의 시간이 쌓인 흔적같았다ㆍ


종교가 없는 난 거대한 시간과 위엄을 자랑하는 자연 경관을 볼때면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든다ㆍ


수많은 사건과 역사가 흐른 시간속에 우뚝솟아 있어도 묵묵하며 사람이 사는 동안에는 차이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비하고 천천히 변할것이다ㆍ


거센 해풍과 파도에도 아주 천천히 조금씩 제 살을 버려갈 것이다ㆍ


그와 같은 단단함으로 나를 지키고 싶다ㆍ


20200513_12471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7. 긴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