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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May 20. 2022

어깨통증이 지나간 자리

지옥같았던 어깨통증에 짓눌렸었다.

삼일만에 세수같은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고 할 수 있는 샴푸질을 했고, 팔을 쭉 들어올려 정수리를 보송하게 말리고 나니 무의식처럼 흐르듯 헤쳐나갔던 일상의 소일거리가 무척이나 감격스럽게 느껴졌다.


건강에 자신있던 적도 없고, 자만한 적도 없었지만 그런 별 생각없음이 어쨌든 특별한 건강이상을 겪고 있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었던 오만한 겸손이었다.


지난 토, 일 내내 그동안 자지 못했던 잠을 몰아자고, TV를 보다, 핸드폰을 보다 하며 뒹굴거렸다.


월요일 아침, 우적우적 요거트를 퍼먹으면서 목과 어깨가 좀 뻐근한데 싶었지만  학교가기 싫어병에서 회사가기 싫어병으로 진화한 비루한 몸뚱이는 늘 그렇듯, 결근할 정도는 아니지만 딱히 아프지 않은 날도 없었다.


현대인의 고질병은 나도 달고 있지 않으면 섭섭이라도 할까, 변비, 일자목 거북목에서 오는 어깨 통증은 심한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있을뿐, 아프지 않은 날은 없었다.


화요일엔 출근길 운전을 할때 사이드 미러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목 뒤부터 어깨, 오른쪽 날개 뼈까지 지끈지끈 쑤시면서, 머리를 조금이라도 돌릴라 치면, 목과 어깨의 근육이 더이상 늘어날 수 없다면서 머리 끝으로 찌릿찌릿한 충격을 보냈다.


팔도 올라가지 않았고, 머리도 숙여지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가동범위는 이 정도도 아프긴 아픈데 범위를 늘리면 근육이 찢어질것 같다는 불안감과 아픔이 참아지지 못하는 정도까지였다.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한의원에 갔다.

하루 아침에, 멀쩡이 자다 일어나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으로 몸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설명을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신묘한 침술의 효능으로 기가막히게 혈자리를 찾아 이 고통이 조금이라도 사그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싶었다.


목, 어깨, 손가락, 발가락에 침을 나누어 맞고, 물리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은 더 깊어져 있었다.


치료를 받기 위해 윗옷을 벗는 행위 자체가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


인생에서 벼락을 맞을 확률은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하루 아침에 팔과 어깨를 쓰지 못할 확률은 ?

생살이 찢어진것도 아니고 외형은 멀쩡하면서 아프다는 생각외엔 다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는 삶이 이어지면 어쩌지 등등


추락하는 기분의 상상력은 끝도 없이 날이 서있었다.


퇴근을 하고, 정형외과로 갔다.

엑스레이를 찍었고, 거북목 진단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통증은, 엑스레이로는 알 수 없었고 의사의 추측성 소견으로 짐작할 뿐이었다.


냉각치료를 받았다.

역시나 옷을 입고 벗는게 아파서 눈물이 찔끔거렸다.


진통 주사를 맞았고, 근육이완제와 소염제를 처방받았다.


엄마는, 평소 건강관리를 못한 딸에게 이때다 싶어, 혼쭐을 내주기라도 작정한 사람처럼 평소 식습관이 좋지 않았다부터, 차를 산것이 잘못이다 차가 없었으면 걷는 운동이라도 했었을 것이다, 주말 내내 집에서만 있었던게 문제다 등등 온갖 이유를 끌어다 붙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받아줄 마음의 여력이 없었다.

엄마의 논리는, 건강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씌우는것 같았다.

잘했다는건 아니지만, 아픈것도 서러운데 죄지은 기분 마저 느끼는것도 싫었다.


죄.

내 몸을 소흘히 돌본 나의 죄를 고통으로 갚아나가야 하는 것인가.


의학의 힘으로 구원받고 싶었다.

통증이 없어진다면 이번에는 건강을 더 돌보는 삶을 살겠다고, 기회를 달라고 누군가에게 빌었다.


약을 먹으며 빌고 아파하며 이틀을 보낸 뒤 삼일째 되는 오늘 통증은 점점 참아낼만한 정도로 사그라 들었다.


이 정도면 필라테스 운동을 갈 수 있겠다 싶었고, 몸을 풀고나면 조금 더 가벼워질거란 확신이 들었다.


오늘만큼 집중해서 필라테스 수업을 듣고 따라하려 안간힘을 썼던 적이 있었을까.


회복기로 돌아선 기운을 느끼며, 안도했다.

두번다신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었다.


건강이 최고야, 건강하세요를 외치는 건강만능주의 시대에 살지만, 아프고 싶어 아픈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모두, 늙고 혹은 병들어 죽게 되지만 병의 고통은 최대한 마주치지 않길 바라고, 빌어주고 싶다.


10,20대 보다, 서른 중반을 넘긴 지금의 건강이라는 주제는 훨씬 묵직하고 엄격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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