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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Jan 11. 2023

허기의 바다를 건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엔 미련을 두지 않으면서 

새로 받아 든 시간의 무게는 힘겨워하니 어김없이 연말과 연초의 열병은 찾아온다.


한 해의 페이지를 닫기 전 이루어진 것은 무엇이고,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그저 멍해졌다.

안정은 평화이면서도 정체다.


큰 잡음 없이 지나간 한 해가 다행스럽다는 생각 한편에는 

잡음을 피하기 위해 죽였던 나의 욕구, 본능은 대체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을까 

그것들의 행방이 궁금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고요한 생의 지속은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으나 파동이 없는 물결 속에 잠겨 있다 보니 

고린내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 같았다.


해일을 일으키지 않는 한, 

앞으로도 그리고 그 앞으로도 진록의 이끼 같은 삶이 이어질거야

물살을 일으킬 힘이 있을까


축 늘어진 가죽을 철썩철썩 때려줄 파도가 그리워지긴 할까

혼자서는 이 흐물거림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누구라도 내 멱살을 잡아채고 반성과 계획, 정리라는 걸 억지로 가르쳐 줬으면 하는 나약한 마음이 들었다.


12월의 끝엔 나약함을 가까운 사람에게 들켜버렸고, 

내 주변에 역정을 내는 사람 하나, 함께 침몰하는 사람 둘이 있어 

1월 중반이 다되어 가는 지금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다.

그러지 말걸, 철저하게 고독하고 외롭게 혼자서 가라앉다 말걸.


스스로의 유일한 믿음은 그러다 곧 말아질 

언젠가는 다시 일어나는 회복성이었는데 말이다.


조타기를 슬쩍 놓는 바람에 

역정을 내는 사람의 불같은 화가 배를 태우고, 

함께 침몰하는 사람의 암울에 내려진 닻을 걷어올리지 못하는 중이다.


활기도는 항구의 배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이 맞는 배를 찾아 언제든 출발할 수 있으며, 

난파에 시름 후 힘겹게 정박해 있는 배를 도와주고, 

많은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불러 모으는 배.


활기도는 항구의 배를 시샘하는 배는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지금의 모양새는 꼭 그랬다.


내 갑판 위엔 제대로 날아간 적 없는 분노의 화포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활기도는 항구의 배들은 무거운 화포들이 제 때에 날아갔고, 

그들의 갑판 위에 없기 때문에 떠나는 것도, 사람을 품는 것도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화와 어리광은 조금 불쌍하다.

인정 없는 타박과 책임을 추궁당한다.

나의 배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쓸데 없이 크다.


유난히 배고픈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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