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막물고기 May 31. 2023

이해에도 노력이 필요해

저절로 관계가 회복되진 않는다ㆍ

착한사람 나쁜사람 따로 없다.

선을 가르는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나에겐 무뢰한 인간이었어도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존재가 되기도 한다.

또 타인에게 선함의 아이콘으로 칭송받는다 해도 그것이 가까운 이에게 향하지 않으면 허망한 트로피일뿐이다.

하여, 근래 새롭게 정의하고픈 이로운 인간의 기준은 타인에게 측은지심을 가지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 거대하고 옹졸한 자기 에고 속에 타인의 기분, 상황, 감정을 한번이라도 생각하고 고려하고 자기 마음에 들일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구별이다.


다툼과 싸움은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나와 너의 의견차이, 언짢음, 마음이 편치 않는 문제들로 양극에서 자기쪽으로 끌어당겨 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며, 상대방이 굴복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변호하는 과정이다.


서로가 자신을 좀 알아달라는 자기연민의 진창 파티인데 그럴때 측은지심에서 비롯된 말 한마디는 진흙속에 피어난 꽃이 된다.


끓어오른 머리에 고요히 맞눌려진 이성의 쓰다듬이 되고, 서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마지막 희망책이 된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아끼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끼지 말라고 전파하고 싶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였음 한다ㆍ


서로 미안할것도 고마울 것도 많은 사이란 엉키고 설킨 단단한 뿌리와도 같다.

나만이 힘든게 아니고, 너만이 괜히 나를 괴롭게 하는것이 아니다.


난장판 같은 자기 슬픔의 성찬위에 더도 말고 딱 한스푼의 생각만 올려주기를.


당신도 나처럼 아프고 힘들겠다는, 그럴 수 있겠다는 타인에게 시선을 둔 생각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허기의 바다를 건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