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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물고기 Sep 19. 2023

나의 작고 귀엽고 끔찍한 회사이야기


퇴사열풍이 풀고 있는건지, 아니면 작디 작은 우물안 우리 회사가 그러하니 느껴지는 체감상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믿고 의지하던 나의 30대 동료 2명이 나란히 사직서를 냈다.


1명은 영업팀 팀장이자, 마케터이자, MD 이고 1명은 회사 최대 매출을 담당하는 MD였다.


퇴사이유는 다양한 이유와, 사정이 들어있을것 같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도 잘 다니던 직장을 이직준비 없이 먼저 사직서를 낸다는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회사를 이끄는 수장에게 질려버린것에서 시작하여, 본 업에 대한 회의감이 치밀어 올랐을거라 생각하니 남 일, 그들의 사정으로 치부해버릴 문제가 아니었다.


쿠팡이 잡아먹고 있는 이커머스 생태계에서 담당 쇼핑몰로 영업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그 가운데, 자신이 했던 말을 하루에도 수십번을 기억하지 못하고 번복하며, 오락가락하는 대표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MD들은 피로도가 굉장히 높았을 것이다.


그에 비하면 한번씩 짜증은 났지만 못참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두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피로도를 가질 수 있었던 다행이자 안일함에 취해, 도움이 되지 못한 회사 동료로 남게 된 것 같아 미안했다.


내가 힘들고 지칠땐, 그 두 명에게 꽤 위안을 받았었는데 말이다.


우리 셋은 미혼에다가 결혼 생각이 없는 30대 중 후반의 여성들로, 취향과 관심사가 다른 재미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1명은 집안의 장녀로, 1명은 집안의 막둥이로 엄마와 다복한 사랑을 교류하며 사는 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고, 미디어 컨텐츠 중독자들이라 전날 어떤걸 보았는지 묻고 답하며 소감을 전하는게 일상이었다.


나이 상관없이 모두에게 마음을 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어쩐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다른 어떤것 보다 비슷한 연령, 시대공감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 호감이 갔고, 친구와 회사동료 그 사이를 오가는 친밀감이 때론 부담스러우면서도 대부분은 소중했다.


그 두명이 퇴사를 하고 나면, 내가 사무실내 최연장자 직원이 된다.


진정한, 고독한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되려나


근속년수가 많다는 것이 더이상 자랑이 아닌 시대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착실하게 매일을 남들 보다 일찍 출근하고, 시키기전에 내 할일은 물론, 조금 더 발전 시킬 수 있는 업무는 없을까 궁리한다 한들, 회사를 박차고 나갈 만한 인재는 못되었다는 증거이자 도태의 산증인이겠다.


일치감치 회사 탈출에 성공한 가까운 사람으론, 연년생 남동생이 있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하루 4-5시간 정도만 업무를 보면 되는 구조로 꽤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잠깐 회사생활을 했을때도 성실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1인 사업의 길에 몰두하기 시작하더니 어쩌다 만나는 날에는 자본의 흐름, 돈과 시장의 구조에 대한 대화외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미쳐야 성공할 수 있는 일에는 시작하기도 전부터 진이 빠진다.

나에겐 그런 열정이 없다.


가장 큰 전제부터 충족이 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게 있어야 했고, 그걸 돈을 부를 수 있는 일로 확장을 시켜야 하는데 첫번째 조건부터 길을 잃었다.


퇴사예정자 팀장님은, 마케팅 본 업을 살려 자신을 브랜딩 해보겠다고 했다.

프리랜서든, 다른 일이든 찾아볼텐데 더이상 회사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다.


회사생활은 엿같고 짜증날때가 팔할이지만 그러면서도 회사생활 이외의 돈벌이를 고민해보지 않았다.

쥐꼬리지만 가장 안정적인 돈벌이 수단이니까.

저축도 적금, 예금만 하는 사람은 어떤 성향인지 단번에 나오지 않나.


하지만 이런 상태로는 아무도 날 가까이 하고 싶은,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으론 느껴지지 않을것 같다ㆍ


모두가 자신만의 성공수기를 안주거리 삼을 날이 왔을때, 나는 뭐 그냥 회사생활 했지라는 단 한줄의 수기만을 고백하는 상상을 한다.


아 이 언니 진짜 답답하네, 자기발전이 없는 사람이네 라는 마음속 야유가 들리는것만 같다.


남들의 인정따위가 무엇이 중요할까 싶지만 남들이 인정해줘야, 스스로가 용서되는 일도 있었다.


회사생활의 한계점은 분명히 보이고 있었고,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 중반 그 언저리쯤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사람과, 한계에 눌려버린 사람으로 나뉘어지는 격동기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생의 과업을 미루고 사는 사람들의 자조적 한풀이 ' 결혼도, 출산도 못했다 ' 뒤에 ' 퇴사도 못했다 ' 가 붙게 될까.


회사 하나 다니는 것도 벅찬데, 겨우 산책이나 한 두시간 다닐 정도인데 회사일 밖에 할 줄 모르는 멍청이가 되어 있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왜이리 피곤하고 불안에 둘러쌓여 살아야 하는가.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야망을 품어야 하고, 그게 아니면 의로운 일을 하거나, 선망을 받아야 한다.


그냥 회사만 다녀서는 안된다고 시대가, 사람들이 부르짖고 있었다.

나는 또한번 출발이 늦었고, 조급하지만 죄다 뜬구름 잡는 소리들로 느껴지며, 뒤쳐지겠지.


어딘들, 언제는, 단단한 내 공간이었고 내 시대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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