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 하나
늦깎이 눈이 펑펑 내렸다.
전날 밤 잘고 가볍게 내리치던 것이
어느새 굵은 뭉텅이같이 무심하게 툭툭 떨어졌다.
그리고 그 무게감이 배경으로 빽빽하게 깔리고 있었다.
우산 없이 눈을 맞아본 것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사진첩 한편에 분명하게 있었던 어린 시절 이후로 처음이었다.
눈꺼풀에 한자리 잡고 앉아 깜박일 적에도 악착같이 붙어 있으려 했고, 머리는 위아래 할 것 없이 검은 털실 속에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하는 새치처럼
한번 변하자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많은 새치 꽃으로 피었다.
세월도 그렇겠지.
언제 이렇게 훌쩍 늙어버렸나 생각할 적에 한참 무르익는 중일 것이다.
나의 몸이 나이 든다는 것은 아무래도 서글프다.
생기있게 차올랐던 뺨과 눈빛에서 물기가 빠져가고 잘 달라붙었던 살에 찰기가 사라지는 건 의식하지 않는 것만이 참아질 뿐 생각날 때마다 괴롭다.
그럼에도 사는 동안이 후회와 고통 밭만이 아닐 수 있는 것은 기억과 추억에서 나이 드는 일은 도망치고 싶었던 날들에 자연치료제 같은 역할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 세월이 약 '이니라 하는 말은 아픔과 인고의 시간을 지나온 나이 든 사람들의 후일담 같은 이야기로 신빙성을 갖춘다.
' 그땐 뭐 그랬지, 다시 돌아가도 멍청하게 미련 떨었을 거야 ' 하며 너스레 떨 듯 얘기할,
시간이 거쳐간 사람으로 될 날이 올 것이다.
눈을 보니 벌써 몇 년은 꿀꺽 삼켜 먹은 듯한 느낌 들었다.
꼭꼭 잘 씹어 먹어야 겠다는 비장한 기분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