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을 세면 깨어납니다.
1.
" 잘 잤니? " 가 아니라,
" 오늘은 무슨 꿈을 꾸었니 "라고 인사를 해주던 남자가 있었다.
그 생소한 질문 또는 관심에 속으로 헤벌쭉 웃음꽃이 가득해도,
겉으론 새삼 특별할 것 없었다는 듯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혀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니지만,
마냥 꾸고 난 이야기만 들려준 것도 아니었다.
그의 눈 앞에 있는 나의 상황과 마음보다, 꿈을 꾸는 나를 궁금해하는 모습이
간혹 야속하여 무심히 흘려듣던 동화책에 삼라의 우주가 있었노라 하는 대단한 작가가 된 것 마냥,
숨고 싶지만 알아봐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노릇노릇 잘 구워 재잘거렸었다.
2.
어렸을 적,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동생과 둘도 없는 단짝처럼 붙어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TV를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간혹 잡히는 위성방송에서 미국 만화영화가 나오기도 했었다.
" 누나 이게 무슨 소리야? , 얘네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
라고 물으면 영어를 알아듣는 것처럼, 화면만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주었다.
어린 동생은 껌벅껌벅 잘도 믿었고, 다음 내용을 궁금해하는 초롱한 눈에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
바지런한 임기응변식으로 살을 붙이는 변사가 되었다.
기억력이 좋은 동생은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쪼꼬만 게 발랑 까져가지고 같잖은 누나 행세를 했다고
놀려먹곤 하는데, 내 생에 가장 총명했던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다.
3.
관심과 사랑에 늘 목이 말랐다.
늘, 내 상처만 한 뼘 아니 양팔 가득은 더 큰 것 같은 더러운 기분이 들었다.
추석 연휴 내내 하루 10시간 남짓 꿈을 매일 꾸었다.
꿈속에서 '너도, 너의 꿈도 궁금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그가 돌아서는 모습을 시작으로
관심 없던 남자 연예인부터, 전 직장동료들, 얼굴만 아는 남자들이 줄줄이 등을 돌리고 있었다.
도미노가 쓰러지듯이 헤어지고 헤어지고 또 헤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등돌림의 축대가 쓰러지고 난 뒤에는 그들과 다르지 않게 상처를 주고 있는
내 모습이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나는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나를 너무 아프게 했던 동생에게 더 아픈 말을 하고 있었다.
4.
요란하고 유별난 생채기였을까.
부끄러울 정도로 연약한 회복력은 내 탓인데,
깊게 할퀸 건 당신들이었다고 생각했던 걸까?
5.
나는 너무 거짓말을 잘 한다.
거짓말이 유일한 도피처이자 숨구멍이다.
6.
이 말 또한 거짓말이다.
7.
좋았던 추억들인데
8.
동생과 헤어진 연인들은
9.
이제는 밉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10.
내가 제일 나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