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한 걸음도 안녕
몇 켤레 있지도 않았지만,
구두를 정리했다.
정리라 하면, 버리거나 필요할 것 같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거나 하는 것인데,
어쨌건 두 번 다시 사용할 일이 없도록 영원한 안녕을 고하는 의식이었다.
잘 신고 싶었다. 구두를.
엄마는 뒤뚱거리듯이 걸을 거면 신지 말라고 했지만,
구두 신은 모습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편하고 위태로워 보여도
어쩌다 한 번은 또각거리는 소리와, 평소와 다른 시선을 받는 건 나쁘지 않았다.
기대고 앉고 싶어지는 자리를 찾게 되고 지탱해 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게 만드는
아픈 걸음은 참배하는 마음을 들게 했다.
한 번도 편했던 적이 없었다.
익숙해지면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잠시도 살가웠던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구두는 기대를 품게 했다.
좋은 곳에 데려가 준다는 흔한 말부터
언젠가는 머리와 옷과 화장을 제대로 갖춰 꾸미고 싶을 때가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는 봄날 같은 기분에 젖게 될 때를 말이다.
그동안은 구두에 친해지지 않은 발이라면,
얼마 전부터는 구두와 함께 살 수 없는 발이 되어버렸다.
오른쪽 다리와 발이 아팠고,
앞으로도 종종, 오랫동안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지천에 널려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 마냥
귀한 줄 모르고 제대로 감사할 줄 모른 채 어기적 거리며 걸었던
산책길을 반성하고 싶다.
왜 항상
아프고 난 뒤 아프지 않았던 날 들의 대한
절절한 감사는 뒤늦게 찾아오게 될까.
통증 없이 씽씽 걸을 수 있었던 두 다리로
그 많던 좋은 날에는 걷지 못하였는가 싶다.
노화된 신체로 건강한 젊은 날을 그리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가늠할 수 없던 슬픔이 손 안에서 까슬까슬한
실체로 느껴지고 있었다.
아픈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