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카이노 오와리

덕질의 시작

by 사막물고기


하늘의 뜻이 조금 필요합니다라면서 눈을 찡긋댔던

미실 고현정이 문득 떠올랐다.


엄지와 검지를 살짝 벌려 꼬집기 직전의 그 짧은 간격만큼이라도,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하여 살고 있다는 느낌과 확신이 필요했다.

흔히 묻는 안부에 토씨 하나 더 붙여 꾸며낼

새로움이 없었고 새로움을 만들 방법이나 기분전환은 또 무슨 의미일까 싶어졌다.

매일을 허무와 무기력을 안고 이 두둑한 기분을 다른 말로 평화와 안정이라고 바꿔 불러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제법 비슷하게 잘 만들었다며 제멋에 개멋에 취해 있었다.

중2병은 중2가 한참 지나고서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걸 보면 불치병 중에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남들 보기에 그럭저럭 지낼만한 삶 같아 보여도 제 입으로 하나둘 이야기보따리를 펼쳐 보이기 시작하면

짠 내 풀풀 나도록 소금에 담뿍 절여진 이야기로 변질되는 건 왜일까.

지금의 변화된 내 모습에 대한 사유 탐색도 흥미가 떨어질 때쯤엔
타인의 삶 역시도 궁금해하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3년 전에 한 커뮤니티 속 글로 알게 된 일본 밴드가 생각이 났다.

세카이노 오와리(SEKAI NO OWARI) 우리말의 뜻은 세계의 끝

남자3명(보컬/기타:후카세,기타:나카진,DJ:러브),여자1명(피아노:사오리)의 밴드

한동안 잊고 지냈던 밴드가, 그리고 노래가 다시 생각났던 건, 알아듣지 못하는 그 많은 일본어 가사 중 한마디 알아들을 수 있었던 가사가 질식할 것 같았던 텁텁한 마음에 비상구 불빛이 켜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히토리쟈나이', 혼자가 아니야

일본 가수들의 비음을 좋아하진 않지만

씩씩하게 불러주는 후카세의 소년 같은 목소리와 놀이공원 퍼레이드를 생각나게 하는 멜로디가

어깨를 토닥 거려주는 것 같았다.


내가 미실의 엄지 검지 사이 만큼의 작은 틈으로라도 바라보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분명 그 문의 입구에서 이 밴드는 연주를 하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음악을 하기 위해 뭉친 멤버들이 아니라, 4명에게는 서로 호흡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나무의 뿌리 같은 공존관계로 엮어져 있는데,

일을 떠나, 오랜 세월 곁을 지켜주고 지켜봐 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음악이라 다른 누구의 말보다
달콤하고 진하게 들린다.


학창시절의 집단 린치, ADHD로 인한 경미성 장애, 정신 병동의 생활, 더 내려갈 곳 없었던

후카세의 세상은 음악이란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더 특별하게 다채로운 색깔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어깨를 감싸주는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사오리에게도 후카세는 구원자였다.

말도 안 되게 동화 같은 친구이자 연인 같은 관계의 둘이었고,

이 둘에게 다정한 나머지 두 명의 친구가 가족 이상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관계를 알고 나면 이들의 음악이 왜 퍼레이드 같은 느낄 일 수밖에 없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가시밭길 같던 현실이라는 지면에서 한 발자국 붕 떠 있는 것으로 생존 방법을 터득한 사람들.

함께 눈높이를 맞추어, 언덕 너머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동료가 적어도 둘 이상은 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약이 필요했다 묘약이든 마약이든. 너무 뻔하게 잘 알아 신기함을 가질 수 없던 것이

나 자신이라면,

막연한 기대와 환상에 들뜨더라도 심장이 움직이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 노래가 그 방법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https://youtu.be/Mi9uNu35G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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