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하다라기 보다는, 내가 이리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싶어,
짧게든 길게든 현재의 나를 정의할 수 있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럴듯하게 있어 보이는 근황을 누구든 의식하여 전달해보고 싶었는데
늘 그렇듯 잘 되진 않는다.
매일을 만나도 두 눈을 반짝거리며 수다를 떨 소재와 흥미를 가지고 종알거리는 회사 동료들을 보면
그저 신기하다.
자신들의 취향, 성향을 알리는데도 열심히고 과거의 사랑이야기, 주변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들 이야기까지 놀랍고 다양한 삶의 파편을 전달하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참으로 열성적이게 전한다.
어쩐지 매번 비슷한 소리인 것 같고 들어도 그만 말아도 그만인 영양가 없는 소리라고 생각되었다.
마음이 늙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형적인 면모들이야 아무리 바둥거려도 20대의 새초롬한 생기를 따라갈 수 없고,
탐하기 시작하면 추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건강하나 지키는 것도 성의를 다하지 않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 시간과 돈의 부족함을 안타까워했던 때도 있었건만,
지금은 잘잘하게 털어 쓰고 즐길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생겨도
하고픈 마음과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봉사는 물질과 노동으로 기부할 수 있지만 남은 여생 같은 것으로도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정말 삶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되어 값지게 쓰일 수 있지 않을까?
‘내일을 꿈꾸니까 오늘이 변하지 않는 거야’
그러니까 오늘을 열심히 살아보자고 격려해주고 있는 노래인데, 몇 번 반복해서 듣다가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내일부턴 달라질 거라는 수없이 반복된 기대와 실패의 잔상.
방바닥에 딱 붙어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었던 10년 전의 모습과, 침전되어 있던 그때의 기분,
생활패턴이 스멀스멀 올라와 옆자리에 자리를 펴고 누워있었다.
‘넌 또 왜 여기 와있는 거니.’
좋지도 싫지도 않은 빵이 되기 전의 밀가루 같은 상태.
퍽퍽하고 쉬이 흐트러지고, 흩날리고, 작은 결심의 덩어리 조차 뭉쳐질 수 없는 그때의 나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다, 혹시 모르지. 한 점도 바뀐 적이 없었던 건지도.
굴리고 만지며 주물떡 거리며 나름 애쓰며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인데
반죽이 된 적이 없다.
몰랐어도 좋았을 감정들은 모른 채 살았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땅굴을 파 두더지가 되더라도, 뒷덜미가 잡힌 채 준비 없이 볕으로 끌어올려질 필요,
그로 인한 어리둥절한 기분, 내가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건가 하는 혼란.
한 톤 낮은 색채와 적은 말수도 일반적인 성격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환영받진 않더라도. 고쳐져야 될 사람이 아닌 그럴 수도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말이다.
소일거리를 찾는 중이다.
함께 액세서리를 만들어보자고 손을 끌어준 친구가 고맙고,
노래를 그만 들어보라는 충고와 챙김에 더없이 비비고 싶어 진다.
나는 그런 것들에 질려버리겠다.
몇 번의 다정한 손길에 첫눈 맞는 강아지처럼 감상에 젖는 게.
사람은 늘 그립지만, 두렵다.
내 마음의 가난함을 들키게 될까 조바심이 난다.
가장 필요하고 원하는 사람이라는 공간에서 의식적으로 멀어지는 것도 힘이 든다.
결국 자석처럼 끌리는 건 닮아있는 사람들이겠지만.
가장 상처를 주는 것도 나와 닮았던 사람들이었다.
정을 붙일만한 일에 치여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