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를 구우며

불을 지핀다.

by 사막물고기


퇴근 후에 회사 로비 1층에 있는 도서관에 잠시 들렀다.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푸른 숲 안에 넝쿨같이 엮어 있는 서가가 참 근사해 보였다.


책을 잠시 빼어 앉아 읽게 되는 의자이자 쉼터가 되는 곳도 같은 생김새의 공간으로 이어져있지 않았다.


앉는 곳에 따라 책 한 권의 글귀가 저마다의 냄새로 스며들 것 같은 각각의 다른 생김새공간들이었다.


괜히 이쪽에 앉아보았다가, 저쪽에 앉아보았다가, 하며 혹시 임직원들처럼 책을 대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파견직은 대출을 할 수 없다는 규정을 보고서야

잠시 잊고 있었던 고용 신분이 의식되었다.


잠깐 아쉬웠을 뿐,


파견직, 계약직, 아르바이트, 인턴, 임시근로자, 등등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지칭하는 근로형태에 더 이상 크게 마음 쓰지 않기로 무던히 노력한 날들이 있틈틈이 들러 읽고 가면 되지 뭐 했었다.


도서관 입구 쪽에 눈도장을 매일 찍고 출근을 해도

아침엔 만원 버스를 뚫고 제시간에 오는 것도 힘드오, 저녁엔 헤실헤실 풀려가는 고단함에 끈 떨어질세라 집에 가야 한다오 하며

생각만큼 찾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언뜻 흘려본 퇴근길 눈도장으로 한 뼘만큼 더 고개를 빼고 보니 서가의 형태가 조금 달라져 있는 것 같았다.


몇 발자국 들어가지 않아,

긴 문장들은 어쩐지 피곤했고,

사진 관련 서적들을 몇 권 들추어보다가 사람들의 웃는 얼굴을 카메라로 담는 작가의 사진과 곁들여 쓰인 단상을 몇 장 보았다.

(작가 이름과 책 제목이 기억이 안 난다, 부인 이름이 명경이라는 것 외엔)


과꽃같이 배시시 웃는 부인의 얼굴 사진 옆에

그녀의 아버지가 된 마음으로 다툼이 많았던 결혼 준비를 맞춰가니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는 글이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이상형을 내세우는 소박한 이유 중 하나를 ' 행복한 가정환경에서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라고 말한다.


행복한 가정환경이라는 기준 자체가 애매하기도 하고, 그 기준 자체도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 우리 집은 행복했어! ' 혹은, '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어 '라고 알려주어도 받는 사람은 환경 안에서 자란 서로의 모습으로 다시 판단할 것이다.


물론 가정환경이 중요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아니지만, 가정, 학교, 사회 등의 울타리를 아우르는 것이 자신의 마음가짐, 자아의 건강함이 받쳐주어야, 좋은 환경의 결과가 뿌린 대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행복한 가정환경이라는 전제는 가난하고 결핍된 마음에서 불러낸

나약한 마음이 튕겨낸 주판알과 같다.


현재의 당신과, 자신이 중요하다.


우리가 힘쓸 수도 없었던 어린날에 어른들이 만들어낸 환경에서 벗어나,

아프고 데이고 패이고 난 후에 세상을 보는 시선과 관점,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수용성 등으로 맞춰가야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틈이 있고 흠이 있는 사람이 따뜻했다.


적어도 내가 겪어온 이들은 그러했고,

그 생채기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숨구멍이 되었다.


아프면 솔직하게 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고,

토닥거려 다독여 줄 때 사람 가슴의 온기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다.


나도 그 작가님처럼

어머니가 된 마음으로 사람들을 헤아리고 품어볼 수 있을까,

아직은 엄두도, 감히 그럴 수 있다고 결심할 말도 떠올릴 수가 없다.


집에 돌아와 군고구마를 구웠다.


나보다 3살, 6살 어린 회사 동료들부터 품어보자 생각하며

껍질을 씻어 싹싹 벗기고, 쿠킹호일을 씌워 불을 지폈다.


맛있다고 좋아했던 간식이니까,

좋아하는 것을 하나 둘 챙겨주는 것부터 시작해보아야겠다.


고구마가 익는 냄새가 달큼하게 집안으로 퍼진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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