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날
저녁엔 비가 올 줄 알고 있었지만
왜 우산은 챙기지 않았을까,
우산을 받쳐들고 서성이고 있구나.
정류장앞 두개의 우산이 무릎옆에 포개어 있구나.
나만의 사랑스러운 상상이자,
기대감은 아마 다시 올것 같지 않아
아득해질만큼 그리운 날에는
신기루 처럼 몇 점 겹쳐
버스 창문 귀퉁이에 습기로 맺히는
수채화 처럼 선해.
얼굴은 잘 그려지지 않아,
그저 니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저 니가 아닌 얼굴외에
모든 얼굴에 담긴 물기어린 냄새를,
그리고 마중을
더 없이 반가워 꼭 안아줄거야.
비오는 날 끈적하게 축 쳐지다가
대롱 말려 올라가는 묘한 반항심이 드는 센치한 기분이 드는건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기다림과 기대에 대한 괴리감에서 온다.
맞벌이였던 엄마가 새삼 야속해질때가
비오는 날 하교길에 우산을 들고 기다려주지 않을때였고,
가난했던 첫번째 연인이 한없이 여유로워 보였던 때는 우산을 들고 기다려주고 있을때였다.
기다림의 시간이 각자 정해져 있다면, 다른 날은 내 시간의 배를 쓸 테니 비오는 날에는 그 반의 반의 반 시간만큼이라도 기다림으로 돌려받고 싶었다.
기이하다, 기이해.
나는 고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 않은가 ?
횡단보도의 파란불 신호를 기다리면서 공중전화 부스안을 잠시 피난처로 삼았다.
세상에, 아직도 공중전화기가 있었다.
그것도 전화카드 공중전화기.
누가 마지막 다이얼을 눌렀을까,
어떤 말을 했을까.
이어폰을 타고 김창완밴드의 '시간'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사랑을 위해서 사랑할 필요는 없어
신호가 바뀌고 뜀박질을 하면서,
심장이 콩콩대기 시작했다.
잠시동안 내 전생은 비오는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려 트럭에 치여 죽은 고양이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찰박거리며 우중속을 뛰놀고 나니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이 들었다.
신기하다 신기해.
기다림의 집착에서 열심히 도망칠 수 있도록 쑥덕거리는 노래를타고,
연약한 마음을 감춘다.
다시한번 공중전화부스를 통과하면
내 손에 우산2개가 들려있고,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
아니, 그때부터가 시간의 처음이 되면 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