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현이의 뇌병변으로 복지카드를 발급받은 것은 두 돌쯤이었다. 슬펐지만 몸이 불편한 것은 눈으로도 확실히 확인이 가능했기 때문에 네 몸은 왜 흔들리고 힘이 없고 너는 걷지 못하냐고 채근하거나 속상해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동네 아이들이 진현이 걷는 모습을 보고 "좀비같이 걷는다.", "왜 이렇게 걸어요?"라고 물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실제로 이상하게 걸었꼬 어찌 보면 좀비처럼 걷는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휠체어를 밀고 어디를 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흘끔흘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진현이가 침을 흘려도 고개가 빼딱해도 대변을 보고 뒤처리를 잘 못해도 제 몸을 스스로 씻지 못해도 컵 하나 제대로 옮기지 못해도 걱정은 됐지만 몸이 불편하니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였다.회사에도 친구들에게도 진현이의 장애를 너무나도 쉽게 오픈했다.그런데 최근에 깨달았다. 내가 진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음을.....꽤 충격적이었다. 나는 쿨한 사람이라 여켰다. 아들의 장애를 쉽게 받아들이는 그런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내가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진현이가 뇌 병변으로 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나에게는 늘 이런 소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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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불편해도 인지는 정상이었으면 좋겠다..
진현이가 커갈수록 다른 아이들보다 인지가 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그것도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아도 아이큐가 25라고 해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지도 않았다.하지만 나는 한 가지는 포기하지 못했다. 소위 말하는 사회성이다. 진현이가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고 비장애아들처럼 대화하고 반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적어도 남에게 방해되지 않고 피해 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못했다.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뜬금없이 욕을 하고 삿대질을 해대는 모습은 정말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가 요즘 점점 진현이와 함께 집안으로만 숨어드는 이유였다. 속이 상했다. 진현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몸이 불편하고 공부를 못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충동적인 행동(물건 던지기, 욕하기, 소리 지르기), 엉뚱한 행동(변기에 물건 빠뜨리기,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발이나 물건 끼우기), 예의 없는 행동은 정말이지 너무너무 부끄러웠다.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교육하지 못한 내 탓인 것 같아 덩달아 나 스스로를 책망하기도 했다. 진현이를 잘 못 키운 것 만 같아 마구마구 우울해졌고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길을 잃을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많이 힘들었다.최근에 깨달았다.나는 진현이의 장애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을.그런 충동적이고 엉뚱하고 예의에 어긋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장애 때문이었다. 진현이는 뇌 병변이다. 뇌 병변이라 함은 뇌가 손상되었다는 뜻이다. 예의 바르고 절제하고 상황에 맞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뇌의 어느 부분이 손상되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그 부분만은 왜 교육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한 걸까?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왜 정상이길 바랐던 걸까?손상된 뇌로 인해 몸이 흔들리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은 그렇게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데 말이다.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는 몸의 장애는 쉽게 받아들였지만 보이지 않는 정신의 장애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받아들이지 못했던 걸까?이제는 당당해지려고 한다.휠체어를 밀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진현이가 엉뚱한 행동을 해도 부끄러워하지 말자. 진현이가 장애 판정을 받은 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 이제서야 온전히 진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다. 내 욕망과 바램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현이도 나도 모두 불행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