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슬픔과 기쁨 #17
금요일 저녁이 되면 늘 짐을 챙겼습니다. 서울 곳곳 지인들의 집으로 향했고, 그분들이 내어준 따뜻한 밥상과 방은 감사한 안식처가 되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짐을 꾸릴 때면 마음 한구석이 이내 씁쓸해지곤 했습니다. ‘내게도 돌아갈 나만의 집이 있다면.’ 그 간절한 바람이 늘 마음을 채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문득 당시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납니다. “여행이 진정 즐거운 이유는, 결국 우리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야. 돌아갈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고단한 떠돌이 삶이지.” 그 한 마디는 불안정했던 제 삶에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집’이라는 든든한 울타리가 있기에 비로소 세상이라는 미지의 영역으로 떠날 용기를 얻는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 시절은 비록 힘들었지만, 제게는 더없이 값진 배움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누군가의 작은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집’이 주는 안정감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절실히 배웠죠. 그때 그 모든 시간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지금처럼 ‘집’이 단순히 머무는 건물이 아니라, 사랑과 신뢰로 이루어진 견고한 세상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어디든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는 건, 그 길의 끝에서 저를 기다리는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방랑처럼 보였던 지난 시간들이 결국 ‘돌아갈 곳’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소중한 여정이었음을, 이제는 담담히 미소 지으며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