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상대는 내 말을 아주 오래 기억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오늘도 그랬다. 가끔 연락하고 지내던 후배를 2년만에 만났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 말문을 열기 위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진짜 오랜만에 보네. 우리 마지막으로 본 게 000에서 맞지?"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밥 먹었어?'와 같은 인사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겠다. 후배가 '네, 맞아요'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너는 그동안 하나도 안 변했니?'라고 물으면서 근황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후배는 대답 대신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나에게 했다.
"네? 선배 기억 안나세요?"
나는 당황했고, 후배는 말을 이어갔다.
"그 때 저 선배 회사 근처로 찾아갔었잖아요. 그 때 저 함박스테이크도 사주시고,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 때 해주셨던 말들이 기억에 남아요."
이번에 나는 '몹시' 당황했다. 함박스테이크를 사준 것이 순간적으로 기억이 안나서이기도 했지만, 더 큰 이유는 2년 전에 내가 했던 말들을 그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내가 했던 말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그 때 내가 혹시 말실수를 하진 않았나?'라고 생각을 했다.
말의 힘을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특히 그 생명력은 얼마나 강한지, 내가 계속 에너지를 공급해주지 않아도 상대방의 귀를 타고 들어가 머리와 마음 속에서 계속 맴돌며 사라지지 않을 때가 있다. 또한 말의 힘은 예측을 할 수 없다. 내가 간절히 진심을 다해 전달한 말이 맥없이 맨바닥에 꼬꾸라지기도 하지만, 그냥 한 말인데 상대에게 비수로 꽂히기도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힘을 주기도 한다. 내 의도, 의지와 상관없이 내 말의 힘을 상대가 키우는 경우다. 내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여졌다고 해서 나는 아무 상관이 없지 않다. 어쨌든 나에게서 태어나 전달된 말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2년 전 후배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말을 했었나보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왠지 대화에 더 몰입이 되는 기분이었다. 오늘의 내 어떤 말이 후배의 머리와 마음에 새겨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후배와 헤어지고 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평소 나의 말을 돌아보았다. 편의점, 카페 등 내가 머물렀던 곳은 물론 메신저, SNS 등 내가 연결된 곳에 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의 말도 함께 있었다. 나 한 사람의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겠다 싶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면서 살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왕이면 날카롭고 차가운 말보다는, 따뜻하고 필요한 말을 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