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의지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약속이나 단어, 기분 좋은 추억이나 경험이 떠오르면 참 좋을 텐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아이러니하게도 생각하지 않기가 어렵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생생해진다. 그 기억은 자주 우리를 괴롭힌다.
이따금씩 떠오르는 나쁜 기억의 종류를 살펴보면 관계에 대한 것이 많다. 고약한 직장 상사와 나 사이처럼 처음부터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던 관계에 대한 기억도 있지만, 우리를 아프게 하는 건, ‘나빠진’ 관계에 대한 기억이다. 뜨겁게 사랑했던 만큼 차갑게 헤어지고 만 연인, 영원할 것 같았지만 지금은 연락조차 없는 친구들, 지금도 왜 나를 배신했는지 알 수 없는 나의 가까웠던 사람들...
서로는 서로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그는 왜 변했을까. 왜 내가 그를 생각했던 것만큼 그는 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기억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답은 모른다. 답을 가진 그들을 더 이상 만날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으므로. 다만,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이 견고하지 못하고, 깨지 쉽고, 변하기 쉽고, 불완전하고, 유동적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 약한 관계가 사실은 약한 나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인정해본다.
그러다 어느 날, 나를 강렬히 괴롭히던 기억에 어느 순간 덤덤하게 반응할 때가 온다. 관계도 기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성, 변화, 소멸이 있다는 것을, 내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관계도 있지만, 내가 끝내고 싶지 않아도 끝나게 되는 관계가 있음을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그것이 결국은 누구의 문제도 아니지 않았을까. 그저 내가 마음의 준비를 하기 전에 더 빨리 소멸의 때가 찾아온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