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달빛서당

어른들을 위한 달빛서당 사자소학 일지 11월 13일

고전이라는 햇볕 쬐기

by 모순


떨어진 기온 만큼이나 겨울이 가까워진다고 느끼는 이유는 햇빛을 받는 시간이다. 새벽 기상을 1년 넘게 이어오면서 4계절의 일출 풍경과 시간에도 관심이 생겼다. 해가 일찍 뜨는 여름 지나 겨울이 다가올수록 밝아지는 시간이 늦어진다. 며칠 전에는 비까지 와서 해를 보는 시간이 얼마 없었는데 평소보다 기운이 나지 않았다. 햇살을 받는 것이 나의 심신 건강에 중요한 일인가보다 싶어서 일조량日照量이란 한자어를 씨앗한자어로 품어봤다.


일조량日照量

일정한 물체의 표면이나 지표면에 비치는 햇볕의 양

표준국어대사전


일조량은 해를 가리키는 日(일), 비치다 照(조), 헤아리다 量(양)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한자어다. 일조량을 국어사전에서 찾으니, 예문으로 '겨울은 낮이 짧아 일조량이 적다.'가 나왔다. 이 문장을 읽으니 양(量)은 시간과 비례(比例)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햇볕이든 공부든 관계든 나에게 비치고 싶은 무언가의 양을 늘리고 싶으면 그것에 노출되는 시간을 일단 늘려보는 방법도 취(取)해봐야겠다.


父生我身부생아신母鞠吾身모국오신
腹以懷我복이회아乳以哺我유이포아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다.
배로써 나를 품어 주시고 젖으로써 나를 먹여 주셨다.

사자소학四字小學


사자소학 첫번째 문장이다. 사자소학을 처음 접할 때 나부터 거부감이 들기도 했던 문장이다. 초2 아이도 아버지 내 몸을 낳으시고라는 문장을 보고 '엄마가 나를 낳았잖아요'라고 물었다.


父生我身부생아신母鞠吾身모국오신, 다음에 나오는 문장 腹以懷我복이회아乳以哺我유이포아, 배로써 나를 품어주고 젖으로써 나를 먹여준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몸을 낳는다에 발끈했는데 이제는 엄마가 몸을 기른다도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궁이 있고 가슴이 있으니 여자가 아이를 품고 젖을 먹여 키운다. 그런데 부, 모의 역할을 낳고 기른다 각각 구별하는 것 자체가 나는 거리를 두고 싶은 내용이다. 고전의 문장에 왜?라는 의문을 갖는다면 나에게 필요한 상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부모라는 말에도 물음표를 달고 싶다.


父生我身부생아신母鞠吾身모국아신을 나는 母父生鞠我身모부생국오신으로 재창조해서 내 마음에 씨앗문장으로 품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가 내 몸을 낳으시고 기르셨다. 이렇게 재창조를 해보는 것은 고전을 바탕으로 생각을 넓혀가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주체가 더 다양해질 수 있겠지. 클래식 음악처럼 고전도 연주가에 따라 다양하고 풍부한 해석을 한다면 그 과정이 더 풍요롭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92년생 작가가 쓴 소설 가녀장의 시대에도 주인공 슬아가 父生我身부생아신母鞠吾身모국오신 등 사자소학을 읽고 그 내용에 의문을 갖는 내용이 나온다. 이 소설 표지에는 사자소학 父生我身부생아신母鞠吾身모국오신에서 부父와 모母의 차례를 바꿔 쓴 母生我身모생아신父鞠吾身부국오신이란 한문이 있다.

할아버지가 근엄하게 해설했고, 그것은 가부장의 말이었다. 감히 내 말을 부정하는 것냐는 질문과도 같았다. 말은 우리를 '마치~인 듯'살게 만든다. 언어란 질서이자 권위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잘 믿는 이들은 쉽게 속는 자들이기도 하다. 웬만해선 속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방황하게 된다. 세계를 송두리째로 이상하게 여기고 만다. 어린 슬아는 선택해야 했다. 속을까 말까.

이슬아 장편소설, 가녀장 시대

질서이자 권위인 언어에 대해 속을지 말지 적어도 나는 선택할 수 있다. 마치 ~인 듯한 언어의 질서를 이해하는 것은 나에게 맞는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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