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이야기다

이번 생은 망한 것 같더라도

by 모순

“망했다”

집을 나서야 할 시간에 잠에서 깼다. 지각의 두려움과 당혹, 민망으로 열어갈 하루는 망한 것 같았다. 습관적으로 빠르게 준비해 집을 나서 버스 정류장으로 숨이 차게 달렸다. 예정보다 일찍 버스가 와서 지각을 면할 것 같은 희망이 보였다. 9시 전 넉넉하게 버스에서 내렸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어 거미줄 같은 지하도로를 헤매 겨우 출근을 했다. 버스 기다릴 때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이르고 버스 내릴 때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늦은 시간이었다.


나쁘지 않다 나를 다독이며 평소처럼 일을 했다. 아침부터 예상치 못했던 변수들이 고개를 내밀었고 나는 두더지 잡기 하듯이 뿅 마치를 휘두르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함께 일해서 덜 지치고 서로 북돋아줄 수도 있다. 내가 놓칠뻔한 뿅망치를 함께 휘둘러주는 동료가 고마웠다. 모처럼 일하는 재미를 느낀 하루였다. 일어날 때부터 망한 것 같았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일이다.


어려움 앞에서 다 잘될 거라는 말은 믿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 대신 망한 것 같은 두려움을 새로운 순간에 대한 설렘으로 전환하고 싶다. 오늘 하루는,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마음으로 순간을 살아가면 이미 정한 결말에 따라가는 뻔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내 앞의 순간을, 내 앞의 사람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간이 쌓여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삶 이야기 속 사건이라 생각한다. 일어난 사건은 되돌릴 수 있지만 그다음 이야기는 내가 취하는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마음에 안 드는 상황과 주변 사람들은 변화시키기 어렵지만 관점을 달리해 볼 자유가 내겐 있다. 어차피 상황과 주변 사람들이 못마땅하다고 믿는 그 진실도 내 주관이 만들어낸 허구일 수도 있다. 내 마음 편하고자 관점을 바꾸기로 했다. 그래도 힘들다면 도망간다.


내가 쓴 그을 보니 ‘… 면 좋겠다’라는 문장이 많았다. 글쓰기는 지난 일과 내 마음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하는 과정이다. 가끔 글 속의 내가 나보다 괜찮은 사람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나를 꾸며서 글을 쓰는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났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자기 서사의 신뢰성을 위해 그에 맞춰서 행동하고 살아간다면 가상으로만 존재하던 자아는 실재가 된다. (김원영 지음/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내가 남기는 이야기에 신뢰성을 스스로 지켜가고 싶다. … 면 좋겠다.’고 내가 생각하고 기록한 모습이 실재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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