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가 만나자고 했다. 다음 주 대형 모임에서 도망쳐 나와 나를 보고 싶다고. 반가웠다. 16년 전 우리는 도망가다 친해졌다. 재미없고 어색한 대학교 새내기 모임에서 빠져나가는 길이었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내 모습도 짠했지만 억지로 어울리기는 싫었던 것 같다. 도망자 둘은 길에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수다를 떨었다. 요즘도 만나면 그런다.
도망가기는 나의 오랜 패턴 같다. 역사 전공에서 도망 가 중국어를 했고 학교에서 도망 가 회사에 들어갔다. 육아로 도망갔으며 다시 회사로 도망갔다. 일상 현실에서 도망쳐 책을 읽는다. 나는 다시 도망을 꿈꾸고 있다. 전속력으로 내뺄 수 있게 지금은 내 자리에서 근육을 키우려고 한다. 도망간다는 상상이 현실에 힘을 주는 아이러니다. 뭐 어때. 도망가기 위해 발버둥 치며 투지가 생기고 무언가 이룰 때도 있다.
긴 시간 청소로 깨끗한 집이 얼마 안돼 다시 어지럽혀졌다. 치우다 한숨이 깊어졌고 눈물이 나왔다. 이렇게 혼자 답답해할 거면 차라리 나가서 걷자 싶어 밖으로 나왔다. 걸으면서도 눈물이 나왔고 내 안에 쌓이 화를 보았다. 부딪히기 싫어 내 의견을 안으로 넣었던 마음, 여러 번 들었던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내 모습, 아팠던 내 이야기는 정작 꺼내고 싶지 않았던 내 마음, 아이들의 행동이 귀여우면서도 짜증 나는 내 마음, 왜 이런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나를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상한 건가, 라는 자책이 심해지면 일단 도망가는 나약함과 자기애가 싫으면서도 좋다. 이젠 나와 주위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어른에 가까워진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 나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이렇게 스스로 마음을 알아채고 달래주는 방법을 알고 있고 그것을 행할 수 있어 다행이다. 방전되어 있던 내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도망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길이었다. 수동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나를 떠나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나를 찾아간다. 스스로 느끼는 감정과 의미가 중요한 나는 그것을 찾지 못하는 환경에서 도망쳤다. 더 자발적인 내가 되는 곳으로 도망치는 발자국이 나중에 미워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