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1년이 되었을 때부터 점심에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할까 망설인 지 이미 몇 달이 넘었을 때다. 퇴근 후 다시 육아로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점심시간마저 어떤 것에 메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점심 운동을 시작한 것은 체력이 안 받쳐주면 일상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운동을 가기 전에는 망설일 때도 많다. 배도 고프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요가를 꼭 가야 할 것 같은 날은 배고프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게 샌드위치, 커피 모닝 세트를 들고 출근한다.
막상 요가를 시작하면 좋다. 내 몸과 마음을 셀프 마사지하는 뿌듯함과 시원함이 있다. 비록 몸이 잘 펴지지 않아 선생님 앞에서 머쓱한 표정을 짓더라도 괜찮다. 취미로 하는 것의 가벼움이 필요한 순간이다. 유연성이 부족해 남들 반 정도밖에 못하는 동작이지만 요가 시간이 즐거웠다. 특히 수련 후 요가 매트에 누워서 휴식을 하는 사바사나 시간의 고요와 평화를 사랑했다. 한낮 도심에서 땀을 흘리며 요가를 하는 내 모습이 좋았다.
요가 동작을 하며 헉헉거리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더 힘든 동작을 시키셨다. 짙은 탄성 섞인 웃음소리가 요가 매트 사이로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좋아요, 힘든 것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요.”
선생님께서 우아하게 말씀하셨다. 그렇지 힘들 때 짜증 내는 것, 누군가에게 화풀이하는 것은 너무 뻔하다. 뻔한 것은 재미가 없다. 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휴우”
숨을 크게 쉰다. 요가 매트 위에 눕는 것 말고도 점심 요가의 좋은 것은 숨소리를 맘 놓고 크게 내는 거다. 사무실 공기를 무겁게 만드는 한숨 소리 말고 요가 매트 위에서 내뱉는 내 숨소리가 낯설었다. 호흡이 짧은 편이다. 화장실도 엄청 자주 간다. 작은 몸과 마음을 가진 것을 알고 있다. 희로애락의 그릇이 금방 차 버린다. 지나쳐 넘치지 않게 자주 비운다. 숨을 크게 내쉬면서,
“호흡을 맞추다”
아무렇지 않게 썼던 말인데 요가 매트에서 오늘 문득 와 닿았다. 누군가를 알게 되고 그 사람의 호흡에 맞추게 되는 것 그 사람을 살게 한다. 나는 내 호흡을 알고 맞추고 있었나? 남의 호흡, 세상의 호흡에 맞춰 애쓰다 숨이 제대로 안 쉬어졌던 때가 떠올랐다. 내 호흡을 놓치지 않는 자세, 요가 매트에서 연습한다
요가는 몸과 마음을 수련시키는 운동이라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글보다 몸으로 익히는 것이 더 내 것이 되는 것 같다. 서른을 훌쩍 넘어 마흔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 사이 ‘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나는 몸 쓰는 것에 늘 자신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삼십 대 이후에 일, 사랑, 임신, 출산과 육아의 시간을 거쳐 내 몸과 만나고 있다. 경험해 보니 모두 몸으로 하는 일이었다. 생활을 위해서라도 체력을 키워야 했다. 한번 시작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발동 걸리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순간이 온다.
요가를 하면서 몸에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동작을 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울 때는 몸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 모를 때다. 나의 코어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코어가 아닌 어깨나 목에 잔뜩 힘이 들어간 모습은 상상만 해도 싫다. 스스로에게 중요한 것을 찾고 지키는 어른의 태도를 오늘도 요가 매트 위에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