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얻은 언니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

언니는 짜증이 많은 만큼 애정도 많은 사람이었다.

by 이오십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게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어떤 일을 함께하는 데 있어서 조건을 내걸거나 - 네가 이거 하나 주면 할게, 혹은 너 먼저 하면 나도 할게 - 설득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고, 내 주변에는 언니가 그런 사람이다. 어떤 취미를 같이 하고 싶어도 그냥 같이 해주는 법이 없어서 언니가 날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몇 년 전, 언니가 어릴 때 잠시 나를 미워했다는 이야기는 더욱 그 생각에 힘을 실어주었으니, 그에 따라 나도 언니를 덜 좋아하기로 한 적이 있다. 애써 연락하지 않으니 사이는 제법 서먹해졌고, 거리가 생긴 만큼 조금은 더 편해졌다.


고등학생 때 학원을 다녀오는 길에 나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언니를 보고 충격받았다.

저렇게 환한 미소라니. 평소에 언니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도 잘 안 하는데 저렇게 싹싹하게 군다고?

가식적이다.

언니가 가족들을 막 대한다고 느꼈고, 실제로 그런 편이었다. 무표정하거나 째려보거나 짜증내거나… 다정하거나 자상하다는 말은 안 어울린다. 짜증이 많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 이득 보는 것만 하고, 무엇보다 나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휴가를 쓴 언니의 제안으로 올해 첫 여행을 부산으로 떠났다. 3박 4일간 지켜본 언니는 놀랍게도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넉살 좋게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사람들과의 대화를 즐겼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먼저 챙겼다. 자신이 먹고 싶진 않지만 내가 먹고 싶은 것도 같이 먹어주고(송정해수욕장 앞에서 10 원빵), 다음 날 여기저기 검색하며 주도적으로 티켓예매를 하고 계획을 세우지만 나 또한 그럴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과거엔 그랬다). 흰여울마을의 소품샵에 가서는 더 놀랐다. 사회생활을 하는 언니의 인간관계가 이렇게나 크게 확장된 걸 부산 소금캐러멜 개수로 확인할 수 있었다.


언니에 대한 이미지가 업데이트된 지 오래됐구나 실감했다. 심술궂은 표정의 언니는 오래전 이미지고 지금의 언니는 너무나 달랐다. 챙길 사람도 많고, 무엇보다 가족들 생각을 엄청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누가 비호감인 사람에게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의하겠는가. 언니는 가시가 엄청 많은 복어였던 것이다.


한때는 자기주장 강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언니가 날 움츠러들게 만든다고 생각해서 언니와의 여행을 피했다. 취향이 확실하고 상대를 설득시키는 것에 대해 자신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묘하게 불편했다. 설득은 마뜩잖은 것이고 납득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토론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었다. 혼자서 지레 겁먹고 대화하기보다 나 편할 대로 생각해 온 것도 나였고, 오히려 짜증이 많고 자기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람들을 ’그냥‘ 미워한 건 나였다. 언니가 가시가 많은 복어라면 나는 쉐도우 복서였다. 허공에 펀치만 날리고 있었음을 깨달으니 허무하기도 하고 그 에너지 낭비에 화가 나기도 한다. 대체 사랑은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이라는 건 어디서 온 생각인지 부끄럽게도 모든 일에 조건을 따지고 이득을 살피는 언니를 보며 난 저러지 말아야지, 저러면 누가 좋아해, 하며 시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끈기와 참을성을 가지고 대화하되, 스스로 겸손해져야지 싶다. 내가 가장 사랑이 많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사는 것도 그만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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