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배달부 키키, 열세 살의 당참이란.

on a clear day - 히사이시 조

by 이오십

마녀배달부 키키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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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영화 특유의 동심가득한 그림체를 최근 들어서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일주일 전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봤고, 일 년 전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를 봤다. 그리고 오늘은 마녀배달부 키키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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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는 열세 살이고, 마녀는 13살이 되면 독립을 해야 한다. 마녀라고 해도 열세 살이면 좀 많이 이른 것 같지만 설정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넘어갔다.

자신을 받아줄 더 큰 도시를 찾아서 엄마가 준 비행용 빗자루, 라디오, 짐 조금 챙겨서 집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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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생각한다.

영화 초반에도 나오는데 키키는 마법빗자루를 타고 비행하는 것만 할 줄 안다고 한다. 마녀가 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별거 아닌, 누구나 다 하는 재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키키는 그렇게 비행능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처음에 도시에 왔을 때 열차에 치일 뻔했기 때문이고, 여러 번 빗자루에서 떨어질 뻔 한 장면이 나와서 그렇다.


다만 달리 생각해 보면 키키는 비행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잘하던, 못하던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키키 역시 자신의 능력치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 자신의 부족함? 별로 생각 안 한다. 그냥 움직인다 일단.

키키는 배달일을 해야 돈을 벌어서 팬케이크를 해 먹을 수 있기 때문에(정착)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잘하는지는 별로 생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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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에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빵집 사장님이 2층 빈 공간을 키키에게 머물도록 내어주었다. 공짜는 아니고 배달일을 하면서 빵집 일을 돕는 조건으로, 그렇게 키키는 좋은 이웃 주민이자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현실에는 전세사기, 부동산 투기와 같은 여러 주거안정 이슈가 만연한데 키키가 인심 좋은 사장님을 만나서 주거문제를 해결해서 대리만족 되었다. 딱 키키가 책임질 수 있는 수준의 일을 맡기면서 적당한 수준의….(화장실이 외부에 있지만 방 크기가 꽤 크고 널찍하다. 게다가 바다뷰) 방을 내어 주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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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는 슬럼프도 겪는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는 자신의 유일한 재능인 비행능력이 약해졌다. 원인도 안 나온다.

키키가 보통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게 되는 걸까, 잠깐 상상했는데 그건 주제의식에서 벗어난 내용이다.

독립도 근래에 날씨가 좋을 것이기 때문에 당장 해야 한다고 즉시 진행시킨 키키답게 키키는 슬럼프에 대해 좌절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냥 극복해낸다.

되든, 안되든 그냥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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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가 비행을 하지 못하면 친구를 잃을 위기에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결국 그냥 해야 하기 때문에 했다.

슬럼프 극복이라는 건 되든 안되든 일단 가장 단순한, 기본의, 가장 작은 단위의 행동을 함으로써 올 수 있는 결괏값이라는 걸 키키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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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배달부 키키를 보다 보면 장르가 만화라서 그런 걸지 몰라도 굉장히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데가 있다. 날아오르듯 가볍고 명랑하게.


키키가 가지는 어려움, 문제점, 고통, 갈등에 대해서 ‘돌파’하는 전개가 시원스러웠다. 키키의 시선이 아니라 제삼자의 눈으로 키키의 움직임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연출되기 때문에 아마 키키가 처음 독립하게 되었을 때의 막막함, 걱정, 혹은 두려움 같은 심리변화에 대해서는 크게 묘사되는 게 없어서 더 키키가 아무 생각 없이 잘 극복해 내고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지금에서야 보면 모든 게 묘사되지 않아도 장면과 장면 사이에 누락된 어떤 과정들은 꽤 다크 한 면도 있을 것 같다고 추측하는 것뿐이지 사실 겪어내는 인물은 별생각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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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키키는 짐이 별로 없다.

라디오, 엄마가 준 빗자루, 까만 마녀복 정도.

불평, 불만 같은 것도 별로 없고 그냥 가진 것에 집중한다. 나였으면 공짜로 제공된 숙소라고 하더라도 먼지가 가득한 방을 내어주면 속으로는 볼멘소리를 했을 텐데…

그만큼 키키는 독립에 진심이다. 그리고 키키는 마녀가 되는 일에 진심이다. 미래에 키키는 멋진 마녀가 되었을 것이다.



독립이 무거운 주제로 느껴질 때도 있는데 키키를 보면 긍정적으로, 가진 것에 만족하며 조금씩 늘려나가는 것도 행복해 보인다.

용기가 필요한 일에 자기 암시 같은 것도 없이 그냥 함으로써 해내는 키키의 긍정적인 모습이, 그리고 ‘도움’이 ‘일’의 원형이라는 것도 키키를 보면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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