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을 먹는다. 치킨.

기분이 나쁘더라도 밥은 먹는다.

by 이오십

살다 보면 기분 나쁜 일이 왕왕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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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기분 나쁘게 한 사람과도 얼굴을 마주쳐야 한다.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둘 중 하나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면 우연히라도 마주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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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내 발을 밟는 사람이 있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멀리 떨어질 수 있으면 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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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부모님이 싸대기를 때리던지, 해서라도 나는 네가 집을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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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언니는 그 말을 내 앞에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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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언니의 요지는 지금 내 나이 때 온전한 직업을 가질 수 없더라도 지금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모든 말이 다 논리적이고, 나를 위한 말이었단 걸 알지만 내 기억에 남은 건 언니가 내 뺨을 때려서라도,라고 말했다는 그 자극적인 사실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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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싸대기라는 단어를 나에게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해? 물어봤다.

곧바로 언니는 말실수했다고 사과했다. 내가 ‘싸대기’라는 단어선택에 대해 지적하지 않았다면 과연 사과했을까.

싸대기… 뺨을 맞아서라도…. 분명 언니의 방점은 ’네 나이에는 나가서 독립해야 한다고 생각해 ‘ 였겠지만 나는 표현에만 매몰되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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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으로라도 사람을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해야 하네,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기분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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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니에게 잘못했던 게 있던가. 내가 그렇게 한심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건가. 말로 해서는 내가 이해를 못 해서 뺨을 맞아야 한다는 건가….

아무튼 그 말을 듣고 차라리 뺨을 세게 맞는 게 나을 뻔했다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의사표현은 효과적이지 못했고 어그로만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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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보기 싫은데 언니가 집에 왔다. 언니 얼굴만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


내가, 왜, 너에게 뺨을 맞아서라도 독립을 해야 하네, 말아야 하네 부모님과 얘기한 걸 건네들었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가슴이 답답하고 억울했다. 물론 이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당장 내게 집이 생기지도 않는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당장 직장이 생기지도 않는다. 왠지 취준생의 인권운동가가 된 기분이다.



삶의 공백기를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함의가 필요하다.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고받는다. 대화를 하면서도, 같이 살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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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화 맥락에 맞지 않는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단어일 뿐이라고, 그렇게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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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내가 기분이 나빴다고 말을 하니 그제야 언니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고 거드셨다. 사실 거들기 전에는 그냥 너 잘 되라고 하는 소리고, 네가 기분 나빴을 수 있지만 사과했으니 너도 마음을 풀라고, 그런 말을 들었었다. 언니의 말을 듣고 불타올랐는데, 이번엔 끝없이 차갑게 식었다.


언니가 나를 기분 나쁘게 하면 그러려니, 무심한 척 받는 역할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내가 무딘 줄 알고, 어떤 말에 상처받는지도 모른다는 게 참 무심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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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그렇다. 흘리면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인데 마음을 크게 흔든다.

앞으로는 어떤 말을 들어도 잠깐만 흔들리고 금세 아무렇지 않아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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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자꾸 생각나도, 지금 있는 기분 좋은 일을 놓칠 수 없다.

그래서 이 글로 이 날의 사건을 적어두고 그랬거니, 지금 있는 치킨에 집중하기로 한다. 오늘 저녁은 치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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